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항구하게 참 지혜를 살아가는 삶(루카 17, 26-37) - 3784

Author
신부님
Date
2025-11-12 11:13
Views
334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784

2025년 11월 14일 금요일

항구하게 참 지혜를 살아가는 삶(루카 17, 26-37)

“그날 지붕에 있는 사람은 집 안에 있는 자기 물건을 꺼내려고 내려가지 마라. 들에 있는 사람도 뒤로 돌아서지 마라. 롯의 아내를 명심하여라.” (루카 17,31-32)

인간은 살아가면서 결코 소유할 수 없는 것과 끝까지 추구해야 할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돈, 명예, 재물 등은 아무리 소유해도 끝까지 만족을 줄 수 없는, 덧없는 겉모습에 불과합니다. 성경은 이러한 덧없는 겉모습을 추구하는 인간에 대해서 이렇게 지적합니다.

“사람은 겉모습을 보지만, 주님은 속마음을 보신다.”(사무엘기 상권 16장 7절)

우리는 이 덧없는 겉모습에 쉽게 현혹되어, 그 너머의 진정성과 영원한 가치를 놓치는 무지함을 반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지혜서와 복음을 통해 성찰하는 참된 지혜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무지를 꿰뚫어 보고, 시선을 끝까지 추구해야 할 하느님을 찾는 삶으로 돌리도록 촉구하는 영적 나침반입니다.

오늘 독서(지혜 13,1-9)에서  지혜서의 저자는 창조 세계를 통해 창조주를 알아보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통렬하게 비판합니다.

“이 세상의 통치자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을 알지 못하여 어리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보이는 좋은 것을 보고도 계시는 분을 깨닫지 못하였고, 작품들을 살펴보고도 장인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지혜 13,1)

바다의 힘, 별들의 질서 등 피조물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은 하느님의 위대함을 증언하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작품 자체의 화려함에 압도되어, 정작 그것을 설계하고 존재하게 하신 장인(匠人)의 지혜와 능력을 깨닫지 못합니다.

이는 곧 성 아우구스티노의.“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영원한 아름다움이시여! 당신은 내 안에 계셨는데, 나는 밖에서 당신을 찾았습니다. 내가 사랑한 것은 당신이 만드신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당신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창조물들이 나를 당신에게로 인도했어야 했지만, 내가 그것들에 사로잡혀 당신에게서 멀어졌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 『고백록』)는고백처럼, 피조물에 사로잡혀 창조주에게서 멀어지는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참된 지혜는 피조물의 겉모습에 멈춰서는 무지함을 극복하고, 보이는 세계 너머의 하느님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지혜서가 창조물을 통해 창조주를 보도록 촉구했다면, 오늘 복음인 루카 복음은 종말적 심판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소유하고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에 대한 실질적인 결단을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심판이 노아 시대나 롯 시대와 같이 갑자기 닥칠 것임을 경고하시며, 그때 우리가 취해야 할 현명한 자세를 가르치십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이 대홍수를 무시하고 쾌락을 추구했듯이, 롯 시대 사람들은 일상의 평범한 일(먹고 마시고 장가가는 것)이 삶을 지배하도록 두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롯의 아내를 명심하라고 하십니다.

롯의 아내의 비극은 뒤에 두고 온 재산에 대한 미련, 즉 재화가 그의 마음의 주인이 된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돈을 소유하는 것 자체가 죄가 아니라, 돈이 하느님을 섬기는 자리까지 침범하여 우상이 될 때 죄가 됩니다. 인간이 부자가 되어 자신이 모든 것을 소유한 것처럼 교만해지면, 그 교만한 마음에는 주님이 차지할 자리가 없게 됩니다.

이처럼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처럼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힘든 이유는 낙타처럼 커진 교만한 마음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바로 인간의 낙타처럼 커진 저 마음을 작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

회개는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이 주인이 된 나의 교만한 마음을 겸손한 마음으로 바꾸어, 다시 하느님께서 주인이 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삶의 역설을 선포하십니다.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루카 17, 33)

이 역설은 덧없는 겉모습과 현세적 소유에 집착할 때 궁극적인 구원을 잃게 되지만, 영원한 것을 위해 세속적인 삶의 가치와 미련을 포기할 때 비로소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는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성 예로니모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것은, 세상의 욕망에 대한 사랑으로 다시 미끄러져 들어가서, 세상에 있는 소유물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 예로니모) 고 경고했듯이, 뒤돌아보는 행위는 세속적인 욕망과 미련에 다시 미끄러져 들어가려는 의지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 아니면 ‘아니요’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즉 영원한 것을 위해 결코 소유할 수 없는 것을 포기하는 현명함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국, 지혜서와 복음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참된 지혜는 ‘무엇을 사랑할 것인가’ 에 대한 근본적인 결단입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세상이 사라진 후에도 남아 있을 것을 열렬히 사랑하라. 영원한 것을 경멸함은 큰 어리석음이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The Imitation of Christ)는  말처럼 영원한 가치를 향한 사랑이 이 모든 어리석음을 극복하는 해답임을 제시합니다.

우리 모두가  눈에 보이는 덧없는 것에 집착하는  무지함을 벗어던지고, 창조주 하느님의 영원한 가치를 꿰뚫어 보는 참된 지혜를 가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향해 항구하게 뒤돌아 보지 않고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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