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루카 18,35-43) - 3786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786
2025년 11월 17일 월요일
헝가리의 성년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루카 18,35-43)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요한 18, 39)
오늘은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기념일입니다.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날 우리는 겉으로는 분주하게 살아가지만, 마음속에서는 점점 공허함을 느끼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않고 바쁜 시간을 보내지만 항상 그 하루의 끝에서 하루를 되돌아 보면, 목적도 방향도 잃은 채 기계처럼 하루를 반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삶을 사람들은 흔히 “좀비 같은 삶”이라고 부릅니다.
‘좀비’는 본래 영혼이 빠져나간 시체가 외부의 힘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를 말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자리에도 겉은 멀쩡하지만 영혼이 잠든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사랑의 감각이 사라진 채 눈을 뜨고 움직이지만 내면은 마비된 영적 무감각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요한 10,10)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은 단순히 ‘살아 있음’이 아니라 사랑과 의미로 충만한 삶입니다.
하느님께 마음을 열고 그분의 빛 안에서 걸을 때,
우리의 영혼이 비로소 깨어나며 참된 생명을 되찾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잠에서 깨어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비추실 것입니다.” (에페 5,14)
오늘 복음은 바로 그 ‘깨어남’의 순간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가까이 이르시자, 길가에 앉아 구걸하던 한 눈먼 사람이 군중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 봅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요한 18, 37)하고 알려줍니다.
그러자 “그가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요한 18, 38)
앞서 가던 사람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를 꾸짖었지만 그는 더 크게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요한 18, 39)
그의 목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 터져 나온 영혼의 외침이었습니다. 그는 육신의 눈은 멀었지만, 마음의 눈은 열려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보지 못했으나, 믿음으로 본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멈추어 서시고, 그를 데려오게 하십니다. 그가 예수님께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그는 단 한마디로 대답합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 단순한 기도는 바로 영혼이 깨어나는 기도입니다.
주님을 향한 겸손한 간청,
보지 못하지만 믿는 신앙,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빛을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 즉시 그의 눈이 열리고,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릅니다.
이 눈먼 사람의 모습은 바로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눈으로는 많은 것을 보지만,
정작 하느님의 뜻과 이웃의 고통, 사랑의 길은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때 우리는 영적으로 눈먼 사람들입니다.
눈이 멀었다는 것은 단지 시력을 잃은 것이 아니라,
진리를 보지 못하는 영혼의 상태입니다.
사랑을 잃은 사람,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
하느님께 마음을 닫은 사람 ,
이러한 사람들이 세상 속의 영적 ‘좀비’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희망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 눈먼 사람은 자기의 어둠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어둠 속에서 하느님을 찾았습니다.
그의 외침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었습니다.
그는 주님을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그를 구원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 이렇게 외칠 수 있을 때,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 순간 우리의 영혼은 깨어납니다.
그분의 말씀은 여전히 우리를 향해 들려옵니다.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우리의 눈이 다시 열릴 때, 세상은 달라집니다.
더 이상 무의미한 반복의 삶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보고, 이웃의 아픔을 보고,
사랑의 길을 선택하는 삶이 시작됩니다.
그것이 바로 영혼이 깨어 있는 삶,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부활의 삶입니다.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기념일을 지내면서
“주님, 제 눈을 열어 주십시오.
제가 주님을 보고, 세상을 주님의 눈으로 보게 하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그때 우리는 더 이상 좀비처럼 끌려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빛과 자비 안에서 새로 태어나는 하느님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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