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죽는 용기와 변화하는 용기(루카 19,1-10) - 3787

Author
신부님
Date
2025-11-16 08:49
Views
333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787

2025년 11월 18일 화요일

죽는 용기와 변화하는 용기(루카 19,1-10)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누구에게서든 무엇이든 등쳐 먹었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루카 19,8)

최근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위기 중 하나는 바로 ‘진실성의 상실’ 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이익과 성취를 위해 옳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거나, 심지어는 위선을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최근 한 칼럼니스트는 오늘날의 세태를 보며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생존 앞에서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잃었다. 우리 사회에는 겉모습만을 치장하는 위선과, 작은 이득을 위해 고결한 가치를 버리는 타협만이 남은 듯하다.”

이렇듯 용기가 사라진 시대에, 오늘 미사의 독서와 복음 말씀은 우리에게 진정한 용기란 무엇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삶의 고결함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에 대한 질문과 동시에  ‘죽음으로 보여준 용기’ 와 ‘삶으로 증명한 용기’ 라는 두 가지 답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제1독서(마카베오기 하권 6,18-31)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를 택한 아흔 살의 원로 엘아자르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이민족들은 유다인들에게 율법을 어기고 이방인의 종교를 따르도록 강요했습니다. 엘아자르는 죽음을 면하기 위해 제사 고기를 먹는 시늉이라도 하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엘아자르는 이를 단호히 거부합니다. 그는 “우리 나이에는 그런 가장된 행동이 합당하지 않습니다” (마카베오기 하권 6,24) 고 말합니다.  단순히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위선을 택한다면, 많은 젊은이가 그를 보고 잘못된 길로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엘아자르가 두려워했던 것은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 젊은이들에게 악한 모범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목숨을 바쳐 “숭고하고 거룩한 법을 위하여 어떻게 기꺼이 그리고 고결하게 훌륭한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 모범을 젊은이들에게 남기려고 합니다”(마카베오기 하권 6,28) 라고 말했습니다.

엘아자르의 순교는 ‘영원한 가치’를 위해 ‘일시적인 생명’을 기꺼이 포기하는 고결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신앙의 정절을 지키기 위한 가장 고귀한 형태의 용기입니다.

반면에 복음(루카 복음 19,1-10)은 세관장 자캐오라는 또 다른 인물을 통해 ‘삶을 통한 용기’를 가르쳐 줍니다. 자캐오는 부유했지만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는 죄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체면 불구하고 뽕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작은 사내를 주목하시고 그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루카 19,5) 이 짧은 초대는 자캐오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꿉니다.

자캐오가 보인 회개는 입술로만 하는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즉시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누구에게서든 무엇이든 등쳐 먹었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루카 19,8) 라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회개의 용기입니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바로잡으려는 실천적 의지입니다. 자캐오는 재산과 명예라는 위선과 탐욕의 껍질을 깨고 내려와, 하느님의 정의에 합당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행동을 보시고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고 선포하셨습니다. (루카 19,9)

오늘 독서의 엘아자르는 신앙의 고결함을 지키기 위해 ‘죽는 용기’를 보여주었고, 복음의 자캐오는 구원을 얻기 위해 ‘변화하는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두 용기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깊은 신뢰와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각자에게 “오늘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자캐오처럼 주님의 초대에 기쁘게 응답하여, 우리의 위선과 타협을 버리고 참된 회개의 삶을 살고자 다짐합시다. 그리하여 엘아자르처럼 신앙인으로서의 고결한 모범을 세우고, 자캐오처럼 예수님을 맞아들여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복된 삶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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