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거룩한 멈춤의 시간의 중요성 (루카 21,34-36) - 3797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797
2025년 11월 29일 토요일
거룩한 멈춤의 시간의 중요성 (루카 21,34-36)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루카 21,36)
세상과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너의 가치를 증명해라"고 속삭입니다. 더 좋은 스펙, 더 많은 연봉으로 자신을 포장해야만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쫓는 '조건부 사랑(에로스적 사랑)'의 한계입니다. 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존재 자체에 이미 가치를 부여하시는 분입니다. 아무 조건 없이 주시는 이 '아가페 사랑'이 우리 자존감의 참 뿌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꾸만 세상의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 혹은 죄를 지었을 때 관계를 파괴하고 숨어버립니다. 창세기 속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서로 탓을 하며 하느님으로부터 숨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힘들면 "내 인생 참견 마(None of your business)"라며 방문을 걸어 잠그고, 타인을 경쟁자나 탓할 대상으로 돌리며 삶의 벽을 세우곤 합니다. 스마트폰 속 숏폼 영상이나 게임으로 도피하며 현실에서 '로그아웃' 하려는 것도, 어쩌면 자신의 부족함을 직면하기 두려워 숨고 싶은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과 죽음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한 존재입니다. 이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억지로 채우려 할 때 삶의 질서는 무너집니다. 그러나 기도는 자신을 숨기는 데 익숙한 우리가 하느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게' 해줍니다. 기도는 나의 한계를 솔직히 고백하고, 그 빈자리를 하느님의 능력으로 채우는 겸손한 용기입니다. 믿고 의탁하는 사람에게는 마귀도 이길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생활의 걱정'으로 물러지거나 무거워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불안 때문에 스스로를 어둠 속에 숨기거나 놓아버리지 않기를, 오히려 기도를 통해 당신 앞에 떳떳하게 서기를 바라십니다.
오늘 독서(다니엘 7,15-27)와 복음(루카 21,34-36)은 세상의 거대한 시스템 앞에 선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다니엘 예언자는 네 마리 짐승으로 표현되는 세상의 강력한 제국들이 성도들을 억누르고 괴롭히는 환시를 봅니다. 이 짐승들은 오늘날 청년들을 짓누르는 '무한 경쟁 사회', '능력주의의 폭력', '경제적 양극화'라는 거대한 시스템처럼 보입니다. 이 힘은 압도적이어서 영원히 세상을 지배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천사는 다니엘에게 분명한 결말을 알려줍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이 그 나라를 이어받아 영원히, 영원무궁히 차지할 것이다" (다니 7,18)
세상의 권력과 우리를 힘들게 하는 시스템은 결국 심판을 받고 사라지지만,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이들은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는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승리의 날, 곧 '그날'이 덫처럼 갑자기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러니 세상의 유혹이나 걱정에 마음을 뺏기지 말고 "늘 깨어 기도하여라"라고 초대하십니다. 여기서 '기도'는 단순히 비나이다를 반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주는 두려움과 거짓 메시지(너는 부족해, 너는 실패했어)를 차단하고, 하느님이 주시는 진짜 메시지(너는 소중하다, 내가 세상을 이겼다)에 접속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갖춰야 할 진정한 '영적 스펙'입니다.
초기 교회 교부인 성 예로니모는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잠에 취한 사람이나 걱정에 짓눌린 사람은 주인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깨어 있는 사람만이 문을 두드리는 주님을 기쁘게 맞이합니다."
우리는 걱정을 멈출 수는 없지만, 걱정에 먹히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주말을 맞아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세상의 소음 대신 내 내면의 소리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거룩한 멈춤'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그것이 바로 깨어있음의 시작입니다.
오늘 하루, 도파민이 주는 일시적인 위로 대신 기도가 주는 깊은 평화를 체험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독서실 책상 앞이든, 알바를 하러 가는 버스 안이든, 잠시 눈을 감고 주님을 부르는 그 순간이 바로 우리가 '사람의 아들 앞에 당당히 서는' 순간입니다.
우리의 피난처이신 주님께 의지하며, 다가올 대림 시기를 깨어있는 마음으로 준비합시다.
우리가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을 느낄 때마다 좌절하지 않고 세상이 요구하는 가치를 추구하지 않으며 , 하느님께서 부여해 주신 존귀함을 기억하며 기도로써 주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었으면 합니다. 세상이 주는 두려움보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희망이 더 크다는 것을 믿으며 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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