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고목생화(枯木生花)의 희망 (루카 10,21-24) - 3799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799
2025년 12월 2일 대림 제1주간 화요일
고목생화(枯木生花)의 희망 (루카 10,21-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루카 10,21)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의 초입, 우리는 종종 자신의 삶이 '베어버린 나무' 같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야심 차게 시작했던 계획들은 그루터기만 남았고, 열정은 식었으며, 관계는 메말라 버린 것 같은 상실감입니다. 더 이상 내 안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영적인 번아웃 상태, 그것이 바로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이새의 그루터기'입니다.
그러나 옛말에 ‘고목생화(枯木生花)' 라 하였습니다. 즉 "말라 죽은 나무에서 다시 꽃이 핀다"는 뜻으로, 쇠락해진 상태에서 다시 일어나거나 역경을 딛고 희망을 찾는 것을 비유합니다. 세상의 이치로는 죽은 나무는 땔감일 뿐이지만, 하느님의 이치로는 바로 그 절망의 밑바닥인 '그루터기'가 희망의 시작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기적이 일어나는 장소가 '지혜로운 척하는 머리'가 아니라 '철부지 같은 마음'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의 복잡한 계산과 냉소적인 태도를 내려놓고,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고 투명한 마음으로 돌아갈 때, 죽은 듯했던 우리 영혼의 그루터기에서 초록빛 새순이 돋아날 것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메마른 우리 삶에 생명력이 돌아오는 비결을 알려줍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 11,1-10)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놀라운 예언을 합니다.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이사 11,1)
가장 화려한 가지가 아니라, 가장 낮고 보잘것없는 잘린 밑동에서 구원자가 나오십니다. 이는 우리가 가진 결핍과 실패가 하느님께는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은총이 시작되는 통로임을 보여줍니다. 주님의 영(지혜, 슬기, 경륜, 용기, 지식, 경외)이 머무르면, 늑대와 어린 양이 함께 뒹구는 평화가 불가능해 보이는 우리 삶에도 찾아옵니다.
오늘 복음 (루카 10,21-24)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령 안에서 기뻐하시며 하느님의 뜻을 깨닫는 이들이 누구인지 알려 주십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루카 10,21)
여기서 '지혜롭다는 자'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만 믿고 하느님을 판단하려는 교만한 이들입니다. 반면 '철부지'는 부모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전적으로 의지하는 겸손한 이들입니다. 고목생화의 기적은 '내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굳은 마음이 아니라, '주님, 도와주세요'라고 매달리는 말랑말랑한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이사야가 꿈꾸는 평화의 왕국에서는 표범과 새끼 염소를 비롯한 모든 동물들이와 함께 눕습니다. 오늘 하루, 내 안에서 서로 으르렁거리는 감정들(불안과 믿음, 미움과 사랑)을 주님의 평화 안에 내려놓읍시다. 또한, 관계가 소원해진 이웃에게 내가 먼저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한 마음으로 손을 내밀어 봅시다.
초기 교회 교부인 성 아우구스티노는 겸손에 대해 이렇게 묵상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오르고자 합니까? 먼저 내려가십시오. 높이 오르려는 자는 먼저 겸손의 기초를 닦아야 합니다. 기초가 깊을수록 건물은 더 높이 올라갑니다."
대림 시기는 화려한 트리를 만드는 시간이 아니라, 내 마음의 뿌리를 점검하는 시간입니다. 그루터기처럼 낮아진 내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바로 그곳이 주님께서 오셔서 꽃을 피우실 자리입니다.
주님, 베어버린 나무처럼 황량한 제 마음의 그루터기를 당신께 봉헌합니다. 고목생화의 은총을 베푸시어, 제 메마른 삶에 다시 희망의 햇순이 돋게 하소서. 세상의 헛된 지혜를 버리고 철부지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당신의 오심을 기다리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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