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세리와 창녀를 통해 배우는 삶(스바 3, 1-2. 9-13 / 마태 21, 28-32) - 3811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811
2025년 12월 16일 화요일
세리와 창녀를 통해 배우는 삶(스바 3, 1-2. 9-13 / 마태 21, 28-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마태 21, 31-32)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는 바로 우리가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매 순간 하느님을 향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이 자유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인간이 됩니다.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셨을 때, 우리는 종종 이 금지 때문에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 선악과를 통해 우리는 죄를 짓지 않을 자유를 향유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죄를 지을 수 있는 자유까지 허락하신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언제든지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함께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은 공정하신 분이심을 강조하십니다. 에제키엘 예언서(33, 13-15)의 말씀처럼, 자신의 의로움만 믿고 불의를 저지르는 사람은 그 의로운 행위가 소용없게 되지만, 반대로 악인이라도 자신의 죄악을 버리고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반드시 살게 됩니다.
이것은 곧 인간의 운명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의 노력과 선택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을 만납니다. 어떤 사람은 미루고 미루다가 마지못해 하고, 어떤 사람은 기쁘게 순명합니다.
오늘 복음의 두 아들 비유(마태 21, 28-30)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어떤 아들인가?"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완벽한 결정이나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용기입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만 하면 모든 것이 원만하게 풀릴 수 있는데도 고집을 부려 일을 그르치는 안타까운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오늘 독서(스바 3, 1-2. 9-13) 에서 스바니야 예언자는 하느님께 반항하고 가까이 가지 않는 도성(스바 3, 1-2)의 죄악을 질타하며 시작합니다. 죄의 근원은 하느님과의 거리입니다. 하지만 예언의 메시지는 심판으로 끝나지 않고, 하느님의 치유와 정화의 약속으로 이어집니다.
“그때에 나는 민족들의 입술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리라. 그들이 모두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주님을 섬기게 하리라.” (스바 3, 9)
하느님께서 남겨두시겠다는 구원받을 백성은 세상에서 강하고 교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죄악의 말과 거짓된 혀를 버리고, 하느님께 피신하는 '가난하고 낮은 백성'입니다.
“12 나는 네 한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니 그들은 주님의 이름에 피신하리라.13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불의를 저지르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그들 입에서는 사기 치는 혀를 보지 못하리라.정녕 그들은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으며 풀을 뜯고 몸을 누이리라.” (스바 3, 12-13)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교만에 기초한 말이 아니라, 겸손하게 마음을 바꾸는 태도입니다. 이 겸손한 태도가 바로 이어서 복음에서 강조되는 회개의 문을 열어줍니다.
오늘 복음 (마태 21, 28-32) 에서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바로 '회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세리와 창녀는 처음에는 잘못된 선택(죄악의 삶)을 했지만, 세례자 요한의 선포를 듣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올바른 길로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싫습니다'라고 말했던 첫째 아들처럼,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포도원에 간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삶과 행동에 직결되어 있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 이들은 입으로는 '예,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던 둘째 아들의 모습입니다. 이들은 겉으로는 올바른 말을 하고 신앙을 고백했지만, 실제로는 회개에 무관심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형식적인 교만에 기초한 신앙을 엄하게 경고하십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마태 7, 21)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겉모습이나 말이 아니라, 겸손하게 회개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삶입니다. 세리와 창녀는 자신의 죄를 인정했기에 겸손했고, 그 겸손이 그들을 요한의 가르침으로, 곧 예수님께로 이끌었습니다. 그들은 스바니야가 예언한 대로, 마음을 정화하고 하느님께 피신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바로 삶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옳은 길을 가려 하면 수많은 유혹과 합리화가 다가옵니다. 이 유혹의 바다에서 헤쳐나올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흘러나오는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때, 우리는 겸손해지고 그 겸손이 우리를 유혹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처음부터 주님의 뜻에 완벽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한계적인 인간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로 돌아오는 삶입니다. 나의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고, 불림을 받았을 당시의 그 겸손한 다짐 그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것이 대림의 자세입니다.
대림 주간을 지내면서,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선물로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공정함을 믿고, 오늘 하루도 세리와 창녀처럼 겸손하게 마음을 바꾸어(회개)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Number | Title | Author | Date | Votes | Views |
| 3174 |
New 희망의 시작 - 비교대신 사랑을 선택하는 삶(사무엘기 상 18,6-9; 19,1-7 / 마르 3,7-12) - 3842
신부님
|
13:22
|
Votes 0
|
Views 23
|
신부님 | 13:22 | 0 | 23 |
| 3173 |
New 희망의 시작 - 성녀 아그네서 동정 순교자 기념일(1사무 17,32-33.37.40-51 / 마르 3,1-6) - 3841
신부님
|
2026.01.19
|
Votes 1
|
Views 106
|
신부님 | 2026.01.19 | 1 | 106 |
| 3172 |
New 희망의 시작 - 사람의 마음을 보시는 하느님(사무엘 상 16,1-13/마르 2,23-28) - 3840
신부님
|
2026.01.18
|
Votes 4
|
Views 190
|
신부님 | 2026.01.18 | 4 | 190 |
| 3171 |
New 희망의 시작 - 새 술을 새 부대에 넣는 용기가 필요한 시대(1사무 15,16-23 / 마르 2,18-22) - 3839
신부님
|
2026.01.17
|
Votes 5
|
Views 231
|
신부님 | 2026.01.17 | 5 | 231 |
| 3170 |
희망의 시작 -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사무엘기 상 9,1-4.17-19; 10,1/ 마르 2,13-17 ) - 3838
신부님
|
2026.01.15
|
Votes 6
|
Views 245
|
신부님 | 2026.01.15 | 6 | 245 |
| 3169 |
희망의 시작 - 예수님의 권위의 참 모습(1사무 8,4-7.10-22ㄱ / 마르 2,1-12) - 3837
신부님
|
2026.01.14
|
Votes 3
|
Views 284
|
신부님 | 2026.01.14 | 3 | 284 |
| 3168 |
희망의 시작 - “하고자 하시면…(If you wish)” (1사무 4,1ㄴ-11 / 마르 1,40-45) - 3836
신부님
|
2026.01.13
|
Votes 6
|
Views 272
|
신부님 | 2026.01.13 | 6 | 272 |
| 3167 |
희망의 시작 - 참된 파견의 사람(사무 3,1-10.19-20 / 마르 1,29-39) - 3835
신부님
|
2026.01.12
|
Votes 6
|
Views 269
|
신부님 | 2026.01.12 | 6 | 269 |
| 3166 |
희망의 시작 - 지배가 아니라 섬김에서 나오는 권위(1사무 1,9-20 / 마르 1,21ㄴ-28) - 3834
신부님
|
2026.01.11
|
Votes 5
|
Views 257
|
신부님 | 2026.01.11 | 5 | 257 |
| 3165 |
희망의 시작 - 삶의 자리에서 하늘나라를 사는 법 (1사무 1,1-8 / 마르 1,14-20) - 3833
신부님
|
2026.01.10
|
Votes 5
|
Views 294
|
신부님 | 2026.01.10 | 5 | 2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