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혼돈의 시기에 필요한 말씀(요한 1서 4,19―5,4 / 루카 4,14-22) - 3830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830
2026년 1월 8일 목요일
혼돈의 시기에 필요한 말씀(요한 1서 4,19―5,4 / 루카 4,14-22)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
인간만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묻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곧 삶의 목적이 되기도 하고, 삶의 희망이 되기도 합니다. 목적과 희망이 있는 사람은 시련과 고통 앞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목적을 잃어버리면, 마음은 작은 바람에도 휘청거립니다.
요즘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정치가 사람을 살리는 길이 아니라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기술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다들 그래.” 이 한마디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순간, 우리 안의 기대가 조용히 식어 버립니다. 그런데 문득 두려운 생각도 듭니다. 언젠가 이 ‘다들 그래’라는 말이 우리 사제들에게 덧씌워지면 어떡하나. 어쩌면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오늘 말씀 앞에서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오늘 제1독서의 말씀이 가슴 깊이 저려 옵니다.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요한 1서 4,20)
믿음은 말로써 증명되지 않습니다. 믿음은 내가 오늘 ‘눈에 보이는 형제’를 어떻게 대하는지에서 드러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고향 나자렛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서를 읽으신 뒤, 아주 짧지만 당시에 온 세상을 놀라게 하는 선언을 하십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
마치 취임 연설처럼 들립니다. . 예수님께서 당신이 바로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심을 선포하시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오래 기다리던 약속이 ‘지금’ 성취되었다는 선언입니다.
여기서 마음이 뜨거워지면서도 한편 두려워집니다. “오늘”이라는 말은 우리를 피할 곳 없는 자리로 데려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앙을 자꾸 미래형으로 바꾸어 말합니다. “나중에 형편이 좋아지면…”, “마음이 정리되면…”, “시간이 생기면…” 하지만 주님의 구원은 자주 ‘내일’이 아니라 ‘오늘’입니다. 미루는 동안, 사랑은 자꾸 얇아지고 습관은 더 두꺼워집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사명은 분명합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눈먼 이들에게 다시 보게 함을, 억압받는 이들에게 자유를 선포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리지 않도록, 오늘 제1독서가 우리 마음을 붙잡습니다. 사랑은 추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반드시 형제적 사랑의 실천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만나면서도 주님을 보지 못했던 때가 많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보면서도 그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때가 많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자유함’을 택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결과는 세속의 포로가 되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스스로 장님이 되었고, 스스로 듣기를 거부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삶은 무엇보다 ‘나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선언이 내 삶 안에서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내가 무엇을 한다는 것은 거창한 업적이 아닙니다. 가장 작은 것에서 출발합니다. 나의 말투 하나, 판단 하나, 습관 하나, 미워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작은 결단 하나. 그 작은 변화는 나비효과처럼 가정과 공동체와 사회를 흔들어 깨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기저에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감사가 자리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뛰어난 지혜로 하느님의 신비를 ‘설명’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자기 삶을 ‘변화’시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말씀이 종이 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손과 발을 통해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올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사건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요한 1서 4,20)는 이 말씀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싶습니다.
먼저 눈에 보이는 나의 형제를 거부하지 않고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하며, 오늘 하루를 이 기도로 시작합니다.
하느님, 성자를 통하여 온 인류에게 영원한 빛을 보여 주셨으니
저희가 구세주의 찬란한 빛을 받아
영원한 영광의 빛에 이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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