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삶의 자리에서 하늘나라를 사는 법 (1사무 1,1-8 / 마르 1,14-20) - 3833
Author
신부님
Date
2026-01-10 16:45
Views
355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834
2026년 1월 12일 월요일
삶의 자리에서 하늘나라를 사는 법 (1사무 1,1-8 / 마르 1,14-20)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우리의 삶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매 순간 우리는 어떤 길을 갈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선택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순간은 생각보다 자주 신앙과 맞닿아 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은 진정한 결단을 동반하고 있습니까?
세상에는 “은혜를 배신으로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수많은 은혜를 받으면서도, 우리는 어느 순간 감사보다 불평을 더 크게 키우고, 받은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다가 결국 마음을 멀리 돌리기도 합니다. 그 뿌리에는 때때로 깊은 열등감이 있습니다. 부족함과 한계를 인정하기보다 감추려 하고, 감사로 살기보다 방어적으로 살 때, 은혜는 내 안에서 기쁨이 아니라 부담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 ‘빚’처럼 느껴지면, 사람은 도망치고 싶어집니다.
여기서 ‘하늘나라를 살아간다’는 말이 갑자기 선명해집니다. 하늘나라는 문제 없는 사람들의 나라가 아닙니다. 오히려 눈물의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 하느님 쪽으로 방향을 돌릴 때, 그 자리에서 하늘나라는 시작됩니다. 빅터 프랭클이 말한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태도를 선택할 자유”만큼은 빼앗기지 않습니다. 한나는 상황을 당장 바꾸지 못했지만, 그 상황 속에서 하느님께로 향하는 태도를 선택합니다. 그것이 회개의 첫걸음이고, 하늘나라의 씨앗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그리고 곧바로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르 1,17)
흥미로운 점은 제자들이 성전 안에서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일터 한복판에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물과 배와 아버지와 품삯, 바로 그 현실 속에서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기도할 때만’ 가까운 것이 아니라, 그물을 만지는 손에도 가까이 와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나라를 살아가는 삶은 추상적인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선택이 됩니다.
오늘의 말 한마디에서, 오늘의 관계에서, 오늘의 돈과 시간에서, 오늘의 분노와 욕심에서 방향을 바꾸는 것. 이것이 회개입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말처럼, 어둠을 어둠으로 몰아낼 수는 없습니다. 빛만이 할 수 있습니다. 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움으로 미움을 이길 수 없습니다. 사랑만이 그 회로를 끊습니다. 하늘나라는 바로 그 ‘빛의 방식’으로 오늘을 사는 사람들 안에서 자랍니다.
고사성어로 말하면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하늘나라의 문지방입니다. 내가 옳다는 확신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의 자리에 서 보려는 마음. 그리고 수신제가(修身齊家)처럼,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구호보다 먼저 내 안의 폭력을 다스리고, 내 가정과 공동체에 평화를 심는 일. 하늘나라는 그렇게 ‘큰 소리’가 아니라 ‘작은 이동’으로 옵니다. 자리 이동, 시선 이동, 마음 이동.
오늘 우리는 한나를 통해 배웁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산다는 것은, 상처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하느님께 가져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통해 배웁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산다는 것은, 내 삶의 그물을 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그물의 목적을 바꾸라는 부르심입니다. 물고기를 낚는 삶에서 사람을 살리는 삶으로, 내 중심의 삶에서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
주님,
오늘도 저희가 하늘나라를 ‘말로’가 아니라 ‘삶으로’ 믿게 하소서.
한나처럼 눈물의 이유를 품고도 하느님께로 향하게 하시고,
제자들처럼 주님의 부르심 앞에서 “곧바로”(마르 1,18) 한 걸음 내딛게 하소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마르 1,15)
오늘의 선택으로 증언하게 하소서. 아멘.
2026년 1월 12일 월요일
삶의 자리에서 하늘나라를 사는 법 (1사무 1,1-8 / 마르 1,14-20)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우리의 삶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매 순간 우리는 어떤 길을 갈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선택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순간은 생각보다 자주 신앙과 맞닿아 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은 진정한 결단을 동반하고 있습니까?
세상에는 “은혜를 배신으로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수많은 은혜를 받으면서도, 우리는 어느 순간 감사보다 불평을 더 크게 키우고, 받은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다가 결국 마음을 멀리 돌리기도 합니다. 그 뿌리에는 때때로 깊은 열등감이 있습니다. 부족함과 한계를 인정하기보다 감추려 하고, 감사로 살기보다 방어적으로 살 때, 은혜는 내 안에서 기쁨이 아니라 부담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 ‘빚’처럼 느껴지면, 사람은 도망치고 싶어집니다.
오늘 제1독서의 한나는 ‘하늘나라를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현실 한복판에서 시작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엘카나는 한나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왜 우느냐? 왜 먹지 않느냐? … 내가 당신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않소?”(1사무 1,8)
참 따뜻한 말인데도, 한나의 마음은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사랑의 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상처는 때로 ‘맞는 말’로도 낫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나는 아이가 없다는 현실 속에서, 사람들의 시선과 비교와 조롱을 견뎌야 했습니다(1사무 1,1-7의 흐름 안에서).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 고통이 식탁 위까지 따라왔음을 조용히 보여 줍니다. 하느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을 들고 하느님께 가는 것입니다.여기서 ‘하늘나라를 살아간다’는 말이 갑자기 선명해집니다. 하늘나라는 문제 없는 사람들의 나라가 아닙니다. 오히려 눈물의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 하느님 쪽으로 방향을 돌릴 때, 그 자리에서 하늘나라는 시작됩니다. 빅터 프랭클이 말한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태도를 선택할 자유”만큼은 빼앗기지 않습니다. 한나는 상황을 당장 바꾸지 못했지만, 그 상황 속에서 하느님께로 향하는 태도를 선택합니다. 그것이 회개의 첫걸음이고, 하늘나라의 씨앗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그리고 곧바로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르 1,17)
흥미로운 점은 제자들이 성전 안에서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일터 한복판에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물과 배와 아버지와 품삯, 바로 그 현실 속에서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기도할 때만’ 가까운 것이 아니라, 그물을 만지는 손에도 가까이 와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나라를 살아가는 삶은 추상적인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선택이 됩니다.
오늘의 말 한마디에서, 오늘의 관계에서, 오늘의 돈과 시간에서, 오늘의 분노와 욕심에서 방향을 바꾸는 것. 이것이 회개입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말처럼, 어둠을 어둠으로 몰아낼 수는 없습니다. 빛만이 할 수 있습니다. 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움으로 미움을 이길 수 없습니다. 사랑만이 그 회로를 끊습니다. 하늘나라는 바로 그 ‘빛의 방식’으로 오늘을 사는 사람들 안에서 자랍니다.
고사성어로 말하면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하늘나라의 문지방입니다. 내가 옳다는 확신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의 자리에 서 보려는 마음. 그리고 수신제가(修身齊家)처럼,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구호보다 먼저 내 안의 폭력을 다스리고, 내 가정과 공동체에 평화를 심는 일. 하늘나라는 그렇게 ‘큰 소리’가 아니라 ‘작은 이동’으로 옵니다. 자리 이동, 시선 이동, 마음 이동.
오늘 우리는 한나를 통해 배웁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산다는 것은, 상처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하느님께 가져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통해 배웁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산다는 것은, 내 삶의 그물을 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그물의 목적을 바꾸라는 부르심입니다. 물고기를 낚는 삶에서 사람을 살리는 삶으로, 내 중심의 삶에서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
주님,
오늘도 저희가 하늘나라를 ‘말로’가 아니라 ‘삶으로’ 믿게 하소서.
한나처럼 눈물의 이유를 품고도 하느님께로 향하게 하시고,
제자들처럼 주님의 부르심 앞에서 “곧바로”(마르 1,18) 한 걸음 내딛게 하소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마르 1,15)
오늘의 선택으로 증언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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