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참된 파견의 사람(사무 3,1-10.19-20 / 마르 1,29-39) - 3835

Author
신부님
Date
2026-01-12 07:23
Views
337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835
2026년 1월 14일 수요일
참된 파견의 사람 (사무 3,1-10.19-20 / 마르 1,29-39)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마르 1,38)

고요하다는 것은 단순히 소리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세상 때문에 산란했던 마음이 비로소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대면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반대로 흘러갑니다. 고요함이 그리운 시대입니다.  말하기 보다는 들음이 더욱 그리운 시대입니다.

오늘 제1독서(사무 3,1-10.19-20)에서 소년 사무엘이 처한 시대는 “주님의 말씀이 드물었고 환시도 자주 있지 않았던”(사무 3,1) 결핍의 시대였습니다. 고요와 평화는 사라지고 이기적인 욕심과 야망이 평화를 빼앗고 전쟁과 불안이 가득한 오늘날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 시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가장 작고 순수한 소년의 잠자리 곁으로 다가오십니다. 하느님의 등불은 인간의 희망이 꺼져갈 때 더욱 세밀하게 타오릅니다.

복음(마르 1,29-39)에서 예수님의 행보는 우리에게 참된 ‘사명자의 리듬’을 보여줍니다. 수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군중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셨지만, 예수님은 인기의 열기에 머물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외딴곳으로 나가 기도하십니다(마르 1,35).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의 말씀처럼, 사목적 열정이 기도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기도가 약해지면 활동은 이내 ‘자기 증명’의 수단으로 전락하지만, 기도가 깊어지면 모든 활동은 비로소 ‘파견’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마음이 알아듣는 빛’이라 했습니다. 사무엘이 엘리의 도움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식별했듯이, 우리 역시 공동체 안에서 그 음성을 해석하는 법을 배웁니다.

또한 성 그레고리오 대교황의 통찰처럼, 참된 목자는 군중의 찬사에 안주하는 ‘머묾’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떠남’으로써 복음을 증거합니다.

사무엘서의 한 구절, “하느님의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다”(사무 3,3)는 말씀이 긴 울림을 줍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하느님은 당신의 등불이 꺼지기 전에 사람을 먼저 깨우십니다. 세상은 성과를 내면 더 속도를 내라고 재촉하지만, 예수님은 성과가 커질수록 더 깊은 기도의 심연으로 돌아가라고 가르치십니다. 기도는 일을 하기 위한 단순한 ‘연료’가 아니라, 내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Identity)를 확인하는 거룩한 자리입니다.

오늘 두 본문을 관통하는 영성은 명확합니다. “듣는 사람은 파견되고, 기도하는 사람은 떠난다.”

예수님께 치유는 목적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표징’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며 사명의 지평을 넓히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학적 균형을 배웁니다.

머물며 돌보는 사랑과 떠나며 전하는 사랑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먼저 듣고, 그다음 섬기고, 마침내 파견되는’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유다 전승의 “지혜의 울타리는 침묵이다”라는 말처럼, 침묵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채우기 위한 공간입니다. 우리는 종종 ‘각주구검(刻舟求劍)’의 어리석음에 빠지곤 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늘 ‘지금 여기’에서 생동하며 울리는데, 우리는 자꾸만 ‘어제의 자리’에 표시를 해두고 과거의 방식 안에서만 그분을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이 찾는 자리가 아니라, 하느님을 만나는 ‘새벽의 기도’ 자리에서 길을 다시 정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응답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사무엘과 같은 단순한 순종입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주님, 제가 듣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태도, 군중의 소음에서 잠시 떨어져 “내가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사는지, 나의 나라를 위해 사는지”를 묻는 정직함이 필요합니다. 치유받은 시몬의 장모가 즉시 일어나 시중을 들었듯이, 우리가 받은 은총 역시 반드시 이웃을 향한 ‘축복의 통로’로 흘러가야 합니다.

주님, 말씀이 희귀한 시대를 살아갈 때에도 당신의 등불은 결코 꺼지지 않음을 믿게 하소서. 분주함이라는 핑계로 당신의 부르심을 소음으로 취급하지 않게 하시고, 사무엘처럼 맑은 영혼으로 응답하게 하소서.

예수님께서 새벽의 기도로 당신의 길을 교정하셨듯이, 저희 또한 머무를 때는 사랑으로 온전하게 머물고, 떠날 때는 미련 없이 담대히 떠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오늘 하루, 저희가 서 있는 그곳에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참된 파견의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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