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하고자 하시면…(If you wish)” (1사무 4,1ㄴ-11 / 마르 1,40-45) - 3836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836
2026년 1월 15일 목요일
“하고자 하시면…(If you wish)” (1사무 4,1ㄴ-11 / 마르 1,40-45)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르 1,40)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불안은 단순히 '일이 많아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 심리학과 철학은 그 원인을 '통제권에 대한 집착'에서 찾습니다. 모든 것을 데이터로 예측하고 시스템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믿는 시대에, 내 뜻대로 되지 않는 1프로의 불확실성도 견디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저서 《불안》에서 "우리의 삶은 우리가 지배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좌우되는데도, 현대 사회는 마치 우리가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것처럼 속인다"고 지적했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 할 때, 인간의 영혼은 피로해지고 신앙조차 '확신을 구매하는 행위'로 전락합니다.
성녀 테레사 수녀님은 이 불안의 시대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제는 이미 가버렸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오늘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시작합시다."
결국 불안을 이기는 힘은 미래를 완벽히 통제하는 능력이 아니라, 오늘 나를 이끄시는 거룩한 손길에 나를 맡기는 '의탁'에서 나옵니다.
오늘 제1독서(1사무 4,1ㄴ-11)는 신앙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와의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하느님의 궤를 전장으로 모셔옵니다. 그들은 궤가 오면 당연히 승리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궤는 더 이상 하느님 현존의 상징이 아니라, 승리를 보장하는 ‘필승의 장치’이자 ‘거룩한 부적’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인간의 목적을 위해 “움직이게” 하려 한 것입니다. 결국 마음이 빠진 신앙은 더 참혹한 패배와 궤의 탈취라는 결과만을 낳았습니다.
복음(마르 1,40-45)은 이와 정반대의 풍경을 우리에게 건넵니다. 한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다가와 무릎을 꿇고 청합니다.
“하고자 하시면…(If you wish)”
이 짧은 고백 안에 믿음의 정수가 들어 있습니다. 그는 주님의 능력을 믿었지만, 그 능력을 사용하는 주권이 주님께 있음을 먼저 인정합니다. 내 뜻을 관철하려는 고집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빈 마음’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를 만지십니다. 기적보다 위대한 것은 그 상처 난 영혼에 닿은 주님의 ‘손길’입니다. 멀리서 말 한마디로 고칠 수 있으셨음에도 굳이 손을 대신 것은, 소외된 인간의 고통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오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이 지점에서 “완고한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을 발견합니다.
완고한 마음은 신앙을 ‘거래’로 여기게 합니다. “내가 이만큼 기도하고 봉사했으니 하느님도 내 편이 되어 주셔야 한다”는 식의 보상 심리가 신앙을 부적화(符籍化)합니다. 마음이 이렇게 굳어지면 기도와 성사는 하느님을 향한 투명한 통로가 아니라, 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로 변질되고 맙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의 나병 환자는 조건을 걸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의 비참을 주님 앞에 투명하게 내어놓았을 뿐입니다. 참된 믿음은 “무엇을 더 가져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내 마음대로 휘두르려는 오만을 “어떻게 내려놓을 것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복음의 마지막 부분은 우리에게 새로운 가르침을 줍니다.
치유받은 이의 넘치는 기쁨이 도리어 예수님의 선교 길을 제약하게 합니다. 이 상황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의 뜨거운 열심이나 감동조차, 때로는 주님의 뜻보다 앞서 나갈 때 복음의 길을 가로 막을 수 있습니다. 참된 믿음은 감정의 ‘뜨거움’을 넘어 주님의 말씀에 머무는 ‘순명’의 결을 지녀야 합니다.
새로운 하루의 문턱에서 우리는 ‘지금 하느님을 ‘모시고’ 있는지, 아니면 내 욕망을 위해 ‘이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을 움직이려 애쓰기보다, 주님의 손길에 기쁘게 움직여지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저희 마음이 세상의 불안에 굳어지지 않게 하소서. 눈에 보이는 표징을 붙잡는 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주님의 손을 신뢰하는 믿음을 주소서.
신앙이 내 편안함을 위한 도구가 되지 않게 하시고, 제 삶이 요란한 소문이 아니라 고요한 증거가 되게 하소서. 오늘도 “원하시면…”이라는 겸손한 한마디로 당신 앞에 온전히 머무는 종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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