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비움으로 채우는 사랑 (예레 18,18-20 / 마태 20,17-28) - 3877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877
2026년 3월 4일 수요일
비움으로 채우는 사랑 (예레 18,18-20 / 마태 20,17-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마태 20,28)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잔을 들고 살아갑니다. 어떤 이는 그 잔에 화려한 성공과 갈채를 담고 싶어 하고, 어떤 이는 타인의 부러움을 사는 권력의 포도주를 채우려 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의 잔은 나를 채우기 위한 잔이 아니라, 나를 ‘비우기 위한 잔’입니다.
제가 은퇴 신부님들이 사시는 공동체로 이사한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1984년에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련 받을 때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그렇지만 본질은 다르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당시는 주어진 규정에 수동적으로 순명하는 삶이었다면 지금은 능동적으로 지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사순 시기를 지내면서 바로 이 사순시기가 타율의 순종에서 자율의 순종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내미신 잔은 달콤한 승리의 축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타인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당신의 생명을 내어놓는 ‘희생의 잔’이었고, 아버지의 뜻을 받들기 위해 자신의 의지를 비워내는 ‘순명의 잔’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지금 내 잔에는 무엇이 담겨 있는가? 나는 주님과 함께 이 잔을 마실 준비가 되었는가?”
오늘 제1독서(예레 18,18-20)에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박해받는 의인’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그는 백성들을 파멸에서 구하기 위해 하느님 앞에서 간절히 빌어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그를 죽이려는 음모와 깊은 구덩이뿐이었습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상황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보다 악을 당하면서도 보복하지 않는 자가 더 강하다. 전자는 마귀의 종이 되지만, 후자는 하느님의 모상을 닮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선의가 악의로 되돌아오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진심으로 건넨 충고가 오해로 남고, 공동체를 위한 희생이 비난으로 돌아올 때 우리는 예레미야처럼 깊은 배신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그 억울함을 폭력으로 되갚지 않고 오직 하느님께 기도로 가져갑니다. 나를 아프게 하는 이들을 위해 빌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마시려 했던 그 ‘잔’입니다.
오늘 복음(마태 20,17-28)에서 예수님께서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계십니다. 그 길은 죽음과 부활이 기다리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주님은 세 번째로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시며 제자들에게 당신의 운명을 나누려 하십니다.
하지만 제베대오 아들들의 어머니와 제자들의 관심은 온통 ‘높은 자리’에 쏠려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토마스 아 켐피스는 그의 저서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의 천상 나라를 바라는 사람은 많으나, 그분의 십자가를 지려는 사람은 적다. 그분의 위로를 받으려는 사람은 많으나, 그분과 함께 고난을 겪으려는 사람은 적다.”
제자들은 ‘잔’이라는 단어에서 승리한 임금의 연회를 떠올렸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잔은 철저히 낮아지는 ‘고난의 잔’이었습니다. 나머지 열 제자가 화를 낸 이유 또한 그들 마음속에 같은 욕망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기심은 곧 ‘나도 그 자리에 앉고 싶다’는 또 다른 욕망의 거울인 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노하는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하늘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선포하십니다.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 테레사 수녀님은 이 섬김의 도리를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가장 위대한 일은 큰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일을 큰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봉사는 하느님께 드리는 ‘사랑의 편지’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은 나를 위해 남을 부리는 법을 가르치지만, 복음은 남을 위해 나를 내어주는 법을 가르칩니다. 참된 권위는 지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헌신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며, 주님께서 내미시는 아래의 잔을 기쁘게 선택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양보의 잔: 내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상대의 필요를 먼저 살피고 채워주기.
인내의 잔: 억울한 오해를 받을 때 즉각 변명하기보다 주님의 수난을 기억하며 침묵하기.
봉사의 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은 일 하나를 정성껏 수행하기.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자기 자신을 잊을 때, 비로소 우리 안에서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자신의 욕망을 비우고 주님의 잔을 함께 마실 때, 우리 삶은 비로소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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