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성경 공부

수요 저녁 성경공부 12/1/2021

Author
Stella
Date
2022-08-07 10:17
Views
192
2021년 12월 1일
요한복음 마흔 아홉 번 째 화상 성경공부: 신부님 말씀 요약

1. 오늘: 요한 11장: 라자로가 죽다
- 인간은 포기할 수 없고 양보할 수 없는 대신 죽을 수도 있는 사람이 있다 (예를 들어, 자기 자식).
-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갈 때 죽어가는 사람이 가슴이 아플까,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사람이 더 가슴이 아플까?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사람이 더 가슴이 아파서
대신 죽었으면 하기도 한다.
- 하느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죽고자 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아플 때 나보다 더 힘들어 하시겠구나,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나보다 더 힘들어 하시는 하느님이 계시겠구나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 이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하고, 내가 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수 있을 때 감사할 수 있다.

(1) 1절 어떤 이가 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는 마리아와 그 언니 마르타가 사는 베타니아 마을의 라자로였다.
- 죽어가는 오빠 라자로를 바라보고 있는 두 자매의 모습 (마리아와 마르타)
- 죽어가는 라자로를 살리신 사건은 예수님이 당신을 세상의 생명으로 계시하신 (즉, 하느님이 당신 자신을 열어서 보여주시는) 사건이다.
- “라자로”는 “하느님이 도와주신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당시 흔한 이름, 실제 인물)
* 진정한 참된 사랑은, 감정이 아니고, 대신해서 죽어줄 수 있는 용기이다.
(부부 사이에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를 위해 죽어줄 수 있는 용기이다. 부모가 아이를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교통사고에서 목숨을 내어놓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감정이라기 보다는 축적된 용기이다.)
- 마리아와 마르타는 오빠 라자로를 위해 참된 사랑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추정한다.

(2) 2절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분의 발을 닦아 드린 여자인데, 그의 오빠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 마리아가 어떠한 사람인지 설명하는 내용 (요한복음 12장: 루카복음 7장의 죄 많은 여자 – 세 여자가 모두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기도를 통해서 알아갈 수 있다. 하느님께 여쭤보기.)
- 왜 마리아만 이야기 하고 있을까? 마르타는 물질적인 것으로 예수님을 사랑했다. 예수님께 드릴 음식을 준비하기에 바빴다.
- 하지만 마리아는 자기가 가장 아끼는 것을 내어놓고 예수님을 사랑했다. 사랑은 거룩한 낭비이다. 유다인들은 이를 비난했다.
* 일반적인 시간과 영적인 시간이 다르듯, 사랑하는 방법도 일반적인 시각과 영적인 시각이 다르다.
* 결혼을 할 때 배우자를 위해 나의 가장 중요한 것을 기쁘게 내어놓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가? 만약 아니었다면 지금이라도 그렇게 하면 된다.
* 사랑은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놓는 것이다. (하느님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 사람은 태어날 때는 아기가 손을 꽉 쥐고 태어나듯이 소유하려는 본능으로 태어나지만, 죽을 때는 손을 탁 놓고 죽듯이 소유한 것을 내려놓는다. 살면서 조금씩 조금씩 비운다.
대림이라는 것은 소유에서 비움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하느님이 오시는 것을 가장 잘 준비하는 것은 소유에서 비움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채우려고 하면 내가 중심이 되지만,
비우려고 하면 하느님 중심이 된다. 이 과정이 인생이다.
* 기억에 오래 남는 사랑은 물질적인 사랑이 아니고 정신적이고 영적인 사랑, 희생이다. 마르타는 물질적인 사랑을 표현했지만, 마리아는 영적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희생했다.
하느님은 어떠한 사랑을 좋아하셨을까?

(3) 3절 그리하여 그 자매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병을 앓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두 자매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람을 통해서 예수님께 사실을 알린다. 예수님이 자기 오빠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a) 왜 스스로 가지 않고 다른 사람을 보냈을까?
- 우리는 예수님이 (그리고 신부님이) 직접 해주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백인대장은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다. 마리아와 마르타도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믿음은 지극히 내면적인 것이다.
– 예수님의 능력은 시공을 초월한다. 예수님이 직접 찾아와 주시지 않아도 믿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 것은 대가를 바라서가 아니라 사랑하고 신뢰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감동을 주고 기적을 만든다. 믿음과 사랑이 기적을 만들지, 기적이 믿음과 사랑을 만들지 않는다. (“감기를 낫게 해주시면 믿을텐데”)
* 신부님께서 어렸을 때 추운 겨울에 복사를 서실 때, 이렇게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놓았을 때, 하느님께서 이를 정말 귀하게 봐주셨음을 느끼신 경험.

(b)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병을 앓고 있습니다.”: 이는 기도와 마찬가지이다. 여기에서 이 여인들이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믿음을 볼 수 있다.
--- 첫번째로, 이 메시지 안에는 섭섭함과 원망함이 담겨져 있지 않다. (“오빠가 병들어 가고 있는데 당신은 뭐하고 계십니까” 라는 원망이 들어있지 않다.) 참된 기도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섭섭함과 원망이 없다. 원망하지 않는 것이 참 사랑일 것이다. 우리는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섭섭해 하고 원망한다.
--- 두번째로, 이 참된 기도문 안에는 공갈 협박이 없다. (“하느님, 이거 안 해주시면 이거 안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하셨다가 “제 뜻대로가 아닌 당신 뜻대로
하십시오” 라고 기도하신다.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기를 바라심)
--- 세번째로, 병든 오빠를 고쳐달라고 push 하는 것이 없다. 우리는 사랑의 이름으로 상대방의 자존심을 긁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받아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인간의 사랑은

감동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메시지에는 push하는 내용이 없다. 성숙한 기도는 “사실을 그대로 내어놓는 것”이다.
(도가의 “무위”: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것을 보여지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보고싶은 것을 보는 사람” 과 “보여지는 것을 보는 사람” 중에 보여지는 것을 보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다. 자아나 내 틀을 고집하지 않고 (종속적임), 열려진 상태이고 의존하지 않고 창조하고 독립적인 사람이다.)
--- 네번째로, 예수님께 찾아와 달라는 부탁이 없다. 예수님의 조건과 능력에 대해서 월권하지 않는다. 우리는 시간과 방법까지 명령한다. (“우리 아이 내일 수능 잘 보게 해주세요.”)
하느님은 하느님께 합당한 기도만 들어주신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할 때 예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은 다 걸러진다는 것을 기억하기.
- 우리는 하느님의 지혜, 사랑, 능력을 믿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기에 내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데 이것에 대한 믿음이 없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우리가 더 잘 되시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더 잘 될 수 있는 방향으로 기도를 들어주신다. 항상 기도의 응답은 나의 지금보다 더 나은 방향이다. 그렇기에 무응답도 응답이다.
--- 마리아와 마르타의 이 기도는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간절한 호소하는 것이다. 이것이 죽은 나자로를 살리게 된다.
--- 하느님께 이렇게 하십시오 저렇게 하십시오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권위와 능력을 신뢰하고 맡기는 것이다.
--- 우리의 기도를 기도답게 하는 것은 하느님의 능력이 보이지 않아도, 월권하지 않고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이 있을 때 기도의 힘이 드러난다.
--- “제가 이러한 상태에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VS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이러한 연습을 하고 살아가야 한다.

(c)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이라고 한다. 주체가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하느님께서 외아들을 보내실 만큼 엄청나게 사랑하신다는 표현이 들어있을 수 있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표현이다.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누구누구”가 아픕니다”)
- 우리 인간의 사랑은 함구해야 하는데 함구하지 않다. 그래서 내가 아닌 하느님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
- 마리아와 마르타는 오빠라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냥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라고만 한다. 여기에 희망이 있는데, 내가 하느님을 사랑하기에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데에 희망이 있는 것이다. 내가 하느님께 무엇을 해 드렸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느님이 내게 무엇을 베풀어 주셨는가를 깨닫는게 중요하다. 그게 바로
“구원”이다. 그리고 그것에 감사하기에 우리의 삶이 변화된다. 그렇기에 하느님께 무엇을 내어 놓아도 아깝지가 않게 된다. 그리고 하느님은 또 채워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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