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성경 공부

수요 저녁 성경공부 1/12/2022

Author
Stella
Date
2022-08-07 10:41
Views
175
2022년 1월 12일
요한복음 쉰네번째 화상 성경공부

요한 11, 54 한 절이지만 중요한 내용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유다인들 가운데로 드러나지 않으시고, 그곳을 떠나 광야에 가까운 고장의 에프라임이라는 고을에 가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머무르셨다.”

세가지 주제
1. 올바른 정신으로 살아가는 삶
2. 광야
3. 이어령 교수님 맘마, 지지
내용: 아이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단어가 맘마.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모든것을 입에 넣을려고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에 ‘이건 하면 안돼’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
‘지지’라는 말을 가르쳐 준다.
ㅁ: 배우기 쉬운 단어; ㅈ 훈련이 필요한 단어. 배우기 어렵다.
신앙생활에서 맘마 (하는것)과 지지 (하지 말아야 하는것)있다. 신앙생활의 완성은 맘마와 지지를 넘어서 스스로 하는것

1 올바른 정신:
아메리카 대륙의 주인은 인디언들. 그들은 종족별로 고유한 명칭을 가지고 있었다. 콜롬버스는 인도로 착각하여 거기 사는 사람들을 인디언이라 부르었다.
인디언족의 첫번째 수모는 침입자에 의해 약탈당하고 희생당하고 명칭이 바뀐것이다.
이런 희생후의 댓가는 무엇일까? 인디언 보호 지역: 특별사업 보호권을 주었다. 알코올세를 내지 않아도 되고 카지노 사업을 허락. 나라에서 준 특해를 외부의 자본이 들어가서 인디언들에게
사고 받은 돈으로 인디언들은 마약을 하거나 알코올 중독이 된던가 하게 되었다. 인디언 보호지역에는 항상 카지노와 큰 호텔이 있고 인디언들은 그 호텔이나 카지노에서 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왜 이런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을까? 자본의 논리에 굴복하고 자극적인 것이 현혹되고 고유하게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함. 제대로 된 생각을 못하였기 때문에. 올바른 생각이 정립되지
안하여서 그런 유혹을 이기지 못하였다.

참된 신앙은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볼 수 있는 그 믿음이 하느님과 나와의 이야기 만들어 가는 고유한 신앙을 가질 수 있고 그럼으로써 세상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다. 누구의
신앙생활을 보고 따라가면 안된다.

한국, 미국 대통령: 대통령 후보에 나온 사람중에 자질이 나은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고 덜 나쁜 사람을 찾는 것이 되었다.
어떠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을때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되면 우리의 아이들이
저정도의 사람도 대통령이 되는데 ‘우리쯤’이야하고 그런 기준을 세울 수 있다.

메시 (축구선수): 국가대표로서 ‘코파 아메리카’ 대회 결승전에서 페널티 킥을 실패한 후 국가대표로써 아르헨티나를 한번도 우승을 하지 못한것 때문에 국가대표를 은퇴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어떤 초등학교 여교사가 메시에게 편지를 보냈다. ‘언제나 성공하는 사람만 있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실패하는 사람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모범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실패하는 사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 여교사의 편지로 인해 대표선수를 다시 하게 되었다.
올바른 정신을 심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인디언들은 세상에 빠져서 자기가 가진 것을 다 빼았겼다.

기원전 586년에 이스라엘은 멸망하였다. 그 이후에 많은 유다인들이 세계각지로 흩어져 살다가 1948년에 가나안 땅을 찾아서 망하고 2600년 만에 이스라엘 국가를 다시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인디언들은 이스라엘보다 100배나 큰 땅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의 주거지를 다 빼았기고 좁은 특정 지역에서 살게 되었다.

인디언 (있던 나라를 빼앗김: 올바르지 못한, 약한 정신) vs 이스라엘 사람들 (빼앗긴 나라를 되찾음: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참정신을 가지고 살아갔다)

유대인의 정신: 영원하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신을 잃지 않는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쟁이 나면 이스라엘로 돌아가지만 아랍사람들은 자기 나라를 떠난다—> 하느님에 대한 신앙에 근거한 행동.

유대인들의 교육:
학교에서 뭘 배웠어? (우리 엄마의 질문); 학교에서 무엇을 질문하고 왔어?(유대인 엄마의 질문)

선도하는 국민으로 살아갈 건인가 따라가는 국민으로 살아갈 것인가?
질문하는 사람들은 선도하는 국민이 된다. 창조하는 인간이 되어간다. 자기만의 고유한 것을 만들어 갈 수 있다 —> 유대인들의 교육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의 정신을 지켰고 인디언은 정부의 지원금이 늘면 늘수록 더 빨리 퇴화하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켜야 할 정신을 가지고 있느냐? 올바른 정신이 있느냐? —>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
정신이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그릇된 정신도 있고 올바른 정신도 있다.

참된 신앙은 잘못된 정신을 절대로 가질 수 없다. 잘못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절대로 참된 신앙을 가질 수 없다.
참된 정신 = 참된 신앙
참된 신앙이 기초를 두고 있는 참된 정신은 어떠한 힘보다 강하고 어떠한 유혹도 이겨낼 힘이 있다. 참된 신앙의 기본인 하느님을 이길 수 있는 대상은 이 세상에는 없다. 하느님의 신앙에서
살아가는 삶보다 아름다운 삶이 없다. 하느님의 사랑은 나를 위해 목숨도 내어 놓은 사랑이다.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을 내어 놓을 수 는 있을지라도 자기 자식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내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순교성인들 중 자기 자식을 제물로 내어놓고 희생시켜서 성인이 된 사람이
있을까? 없다. 그러나 하느님은 자기 아들을 우리를 위해 내어 놓으셨다. 하느님은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 올바른 정신을 심어 주는 사람, 올바른 정신을 사람들이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사람이 가장 위대한 지도자가 된다.

올바른 정신을 유산으로 남겨줄 수 있는 사람이 가장 부유한 사람, 후손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
올바른 정신을 소유한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자.
올바른 정신은 바로 하느님을 믿는 신앙

11,54 “더 이상 유다인들 가운데로 드러나게 다니지 않으시고….”
수석사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을 잡아서 죽일려고 하고 이미 체포령을 내어놓은 상태.
그런상황에서 예수님은 더이상 유다사람들 가운데에서 드러내 놓고 다니시지 않았다.

11, 54 “광야에 가까운 고장의 에프라임이라는 고을에 가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머무르셨다.”

이 사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기 며칠 전 일이다.
라자로를 살리신 일로 인해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을 서둘러서 죽일려고 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광야 근처의 에프라임이라는 고을에
머무르셨다. 일종의 광야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죽을때가 다가오면 혼자 있기를 원한다. 혼자서 광야로 나갈텐데 왜 예수님은 죽기 얼마전에 제자들과 같이 가셨을까?
: 에프라임이라는 광야 근처로 가신 이유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러 가신것이 아니고 제자들에게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기 위해서 함께 가셨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참된 믿음,
올바른 정신을 심어주시려고 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 제자들은 세상사람들로 부터 완전히 무시당하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으로 부터 참된 신앙을 배우고 참된 신앙의 소유자가 되어 참된 신앙으로 무장하고 기득권자들 앞에 섰을때 제자들은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고 수석사제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고 부끄러워하게 되었다. 그들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하고 제자들에게 묻게 된다. 세계 최고의 로마 권력도 그들앞에서는 무력하였다. 로마제국의 칼과
권력이 제자들에게 사형신고를 할 수는 있지만 그들의 올바른 정신과 참된 신앙을 죽일 수는 없었다. 부, 권력, 명예로 협박을 하여 몸은 죽여도 정신은 죽일 수 없었다.
올바른 정신이 닿는 곳마다 새로운 역사가 일어난다.

초대 공동체: 박해를 통해 퍼져나가게 된다. 안주할려고 하는 사람들을 쳐서 그들이 도망가서 퍼져나가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게 되었고 그런 공동체가 퍼져나가서 현재 우리까지도 신앙을
가지고 살게 되었다. 하느님의 구원역사를 보면 인간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지나고 나서 보면 하느님께서 우리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시는 방법이다.

제일 지혜로운 사람: 안맞고도 하는 사람
두번째 지혜로운 사람: 맞고 하는 사람
완고한 사람: 안맞고도 할 수 있는데 맞고 하거나 맞고도 안하는 사람
무식하고 다른 사람들로 부터 지탄받는 제자들을 하느님은 지혜로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무식한 베드로가 주축돌이 되고 구약과 신약의 내용을 통달하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하루에 삼천명씩
세례를 받게 된다. 외부적으로 부터 배우는 세상적인 학문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참된 신앙으로 올바른 정신으로 살아갈때 우리에게 세상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성령으로 부터
받게된다.

디아스퍼라 = 퍼져나간 사람들 —> 가는 곳 마다 공동체를 만들고 신앙을 전할때마다 새로운 역사가 생긴다.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을 살아가고 삶을 통해 하느님이 완전하고 좋으신지
사랑인지 증거해 준다. 그런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우리에게 질문해보자:
현재의 나는 그리스도 인으로 살아가면서 일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참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모습이 나를 통해 이웃에게 전해지고 있는가?

미국 학생이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는 사랑의 고백. 그러나 한국 학생의 편지는 반성문
잘 살아야 되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데 잘사는 것이 일등하는 것이라고만 가르친다. 정말 잘 사는 것은 올바른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
부모는 아이들이 공부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 남이 가르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배우려고 하는 동기 부여를 해 주어야 한다.
사랑을 고백할 수 하는 사람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
자식을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교육시키는 부모가 됩시다.

1928년 미국의 공항시대 조지 베브리시라는 청년의 이야기:
공항시대에 대학중퇴를 하고 보험회사에 취직.
NBC 공개홀에서 노래를 불러 그 노래가 좋은 반응을 얻게 되어 정기 출연 제안을 받게 되었다.
엄마에게 이 소식을 알려줌. 그러나 엄마는 한참 생각하다가 메모지를 주었는데 거기에 적혀있던 시에 감동을 받았다. NBC출연을 거절하고 그 시에 자기가 작곡을 해서 부르고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게 되었다.
노래 제목: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그 사람이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어머니에게서 올바른 정신을 물려 받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들에게 올바른 정신을 물려
줄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광야로 가셨던 이유는 예수님은 자기의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자들에게 올바른 정신을 심어 주기 위해서였다.

2. 광야란?
예수님의 공생활이 시작된곳은 광야이다. 예수님은 40일을 광야에 머무셨다.
하느님과 내가 만나기 가장 좋은 곳. 왜냐하면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만날 수 없는 곳이기 때문. 광야에서는 하느님을 만날 수도 있고 사탄을 만날 수 도있다.

광야는 사람들이 거주할 곳은 전혀 아니다.
낮에는 용광로와 같은 뜨거운 열기. 한밤중에는 몰아치는 한기를 막을 수도 없다. 빗물외에는 절대 필요한 물도 구할 수 없다. 오늘까지 건설이 발달했어도 사막에 집을 지을 수 없다.

사람이 전혀 살 수 없는 광야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인가?:
증오나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 (‘사해의 언저리에서’)
무질서한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 도둑이나 강도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그들은 상인들이 물자를 나를때 그런 사람들을 공격하여 그들의 재물을 빼았았다. 예)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강도를 맞은 사람 (루카 10장)

증오심에 사로 잡힌 사람들: 성경에 나오는 열심 당원들 = 로마에 반항하고 증오하는 사람들.
공포심에 사로 잡힌 사람들: 하느님의 심판에 대해 공포심에 빠져있다. 심판하고 단죄하는 하느님으로만 생각하고 사랑의 하느님을 상상하지 못함. 그들은 하느님의 심판이 임박했다고
생각하고 그 심판을 피해 광야에서 수도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느님에 대한 심판에 대한 공포심이 커질 수로 규율을 더욱 엄하게 만들어 갔다.
초대교회때에 많은 사람들이 광야에 나가서 생활을 했다 (예: 세례자 요한)

광야라는 곳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살고 있었다. 숫자는 지극히 적었지만 광야는 이 세상의 축소판.
무질서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 (도둑), 기득권을 증오하면서 자기의 사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 (열심당원), 불확실 미래와 하느님을 무서워하면서 자신의 삶의 규율을
엄하게 만들어 가면서 그렇게 살아가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단죄하고 심판하고 살아 가는 사람들 (에세네파, 금육주의자들, 수도자)
세 부류의 사람들이 살아 가고 있다.

광야에서 예수님이 받으신 사탄의 세가지 유혹
첫번째 유혹: 돌을 빵으로 바꾸어보아라.
두번째 유혹: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라. 초능력을 발휘해 보아라.
세번째 유혹: 사탄을 경배하면 모든 권력을 주겠다.
—> 이 유혹은 40일씩 걸릴 필요가 없다. 하루면 끝날수도 있는 유혹이다.
—> 사탄의 유혹인지 알면 이겨내기 쉽지만 모르면 이기기 힘들다. 나쁜사람이 와서 이야기 하면 나쁜사람이니까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탄은 자기가 사탄이라고
공개하지 않고 나타난다. 아름다운 천사의 얼굴로 또는 성모님을 가장해서, 또는 수녀님, 신부님을 가장해서 나타나기도 한다. 위장된 모습으로 나타난 사탄을 이겨낼 수 있을때 참된
유혹에서 이겨내는 것이다.

예수님의 경우:
광야에서 세상을 만나신다.
사탄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이용한다.
도둑을 이용 —> 자신이 그리스도이면 돈과 빵으로 우리를 먼저 채워달라. 도둑들을 이용해서 오는 유혹이 사탄에 의한 유혹임을 아신다.
자신의 삶의 규율을 엄하게 만들고 살아가는 수도자를 이용 —> 당신이 정말 우리를 심판의 공포로 부터 구원해 줄 수는 구원자라면 그런 능력이 있음을 먼저 우리에게 보여달라하면서 유혹
열심당원을 이용 —> 메시아라 하면 로마를 몰아내고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권력을 찾아달라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탄이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도둑, 수도자, 열심당원들을 내세워 유혹할 때에도 다 알아 보시고 이겨내셨다.

광야에서의 유혹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사랑밖에 이세상을 구원할 수 없음을 보여주신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일깨워 주셔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은 하느님은 벌 주시는 분이라는 인간의 그릇된 신앙을 고쳐주시고, 무질서한 욕망, 증오심, 공포들, 즉 사탄의
모든 유혹들을 다 끌어안고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아셨다.

광야에서 나오신 예수님은 갈릴레아의 가난하고 별볼일 없는 사람들에게 설교하신다. (산상설교: 마태 5장 3절-4절)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처럼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올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마태 3,7) —> 심판의 공포심으로 사람들을 몰아넣지 않으셨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 (마태 3, 9)” —> 모든
사람들은 단죄하지도 않으셨다.

요한 3, 16-17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힘든 세상에 지쳐있는 인간들은 상상할 수 없는 말씀을 우리에게 해주시고 그런 말씀 하나하나가 놀라운 사랑이였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비난을 전혀 개의치 않고 살아가신 분이다.
창녀들의 손을 잡아주시고, 세리들의 친구가 되어주셨다.
자신이 잘못 살아온 삶을 뉘우치는 창녀의 눈물과 진정한 새로운 삶을 살려는 세리의 간절한 마음을 받아주셨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이세상을 어떤 성전보다도 더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때문이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을 예수님은 다 받아주심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마태 11, 28)
이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품어 안으신 하느님의 사랑을 예수님은 알고계셨다.
당신 자신이 죄값을 치르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하느님의 온전한 사랑을 완성하셨다.

주제 2번째의 광야를 살펴봄으로써 “왜 예수님이 광야에서 그런 삶을 사셨는가? 왜 유혹을 받으셨는가? 왜 제자들을 대리고 광야로 가셨는가?”에 대한 이해해 볼 수 있다.

예수님을 알아본 사람들
십자가 처형의 총 책임자: “백인대장과 또 그와 함께 예수님을 지키던 아들이 지진과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을 보고 몹시 두려워하며,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 이셨다.” 하고 말하였다.”
(마태 27, 54)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간 죄인: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루카 23, 42)

오늘 공부내용 요약:
광야에 대한 묵상이 필요할 것이다.
올바른 정신
인디언과 유대인의 차이
광야에서의 삶의 모습

다음주: 세번째 주제 맘마와 지지, 요한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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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저녁 성경공부 2/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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