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연중 제 20주일 - 참 평화를 위한 분열(루카 12, 49 - 53)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연중 제 20주일
2025년 8월 17일 일요일
참 평화를 위한 분열(루카 12, 49 - 53)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 12, 51)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마태오 17,22-23)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영광스러운 부활을 두 번째로 예고하신 구절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겪으실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이라는 현실과, 그 모든 것을 이겨낼 부활의 희망을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인간의 손에 넘겨져 죽음에 이르는 절망적인 길이지만, 하느님의 손길로 다시 살아나시는 영원한 생명의 길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 속에서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짜 뉴스와 왜곡된 정보가 진실을 가리고, 정의를 말하는 이들이 오히려 비난을 받는 시대입니다. 국제적으로는 전쟁과 갈등이 여전히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경제적 불안과 정치적 분열이 각 나라 안에서 심화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복음을 지키려는 노력과 세상과 타협하려는 경향이 갈등과 분열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탈무드에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그저 올바르게 살아가라. 그러면 결국 세상은 그대의 진심을 알게 될 것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오해와 비난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들은 바로 그 진실을 향한 믿음의 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 12,51)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충격을 줍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평화가 아닌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다고 하시지만 이 분열은 단순한 갈라섬이 아닙니다. 이 분열은 참된 평화를 향한 역설적인 과정입니다. 거룩한 분열입니다.
오늘 첫째 독서인 예레미야서 38장은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어떤 고난을 겪는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바빌론에 맞서 항복을 주장하며 심판을 예언했습니다. 이는 백성들에게는 절망적인 메시지였고, 대신들에게는 반역 행위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들은 예레미야의 말이 군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고 비난하며 그를 죽이려 합니다. 유약한 치드키야 임금은 대신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그의 목숨이 그대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하며 책임을 회피합니다. 결국 예레미야는 물 없는 저수 동굴에 던져져 진흙 속에 빠지고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합니다(예레 38,6).
여기서 ‘인간의 손은 용서와 자비가 없는 잔인함을 상징합니다. 구약의 다윗은 자신이 죄를 짓고 난 뒤, 사람의 손에 당하는 것보다 하느님의 손에 당하는 것이 낫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의 자비는 크시니, 사람 손에 당하는 것보다 주님 손에 당하는 것이 낫겠소.”(2사무 24,14)
이는 인간의 손은 죽이는 손이지만, 하느님의 손은 살리는 손임을 보여줍니다. 예레미야가 진흙 속에 빠진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고통을 넘어, 절망의 구렁텅이에 내던져진 그의 처지를 상징합니다. 세상은 종종 듣고 싶지 않은 진실을 외면하고, 그 진실을 전하는 자를 제거하려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모두가 침묵하고 외면할 때, 에티오피아 사람인 궁중 관리 에벳 멜렉이 나섭니다. 그는 임금에게 가서 대신들의 행위가 “모두 악한 짓”(예레 38,9)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합니다. 그의 행동은 매우 위험한 것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기보다 무고한 예언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용기를 냈습니다.
에벳 멜렉의 용기 있는 간청에 치드키야 임금은 마침내 마음을 바꾸어 예레미야를 구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이 이야기는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하느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계획을 위해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구원을 이루어내시는 분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는 힘
예레미야의 이야기가 던져주는 깊은 울림은 오늘 둘째 독서인 히브리서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히브리서 12장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을 **'경주(race)'**에 비유하며, 그 경주를 완주하기 위한 구체적인 지침과 격려를 담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먼저 우리에게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 버리고”(히브 12,1) 경주를 시작하라고 권고합니다. 마치 운동선수가 불필요한 무게를 모두 벗어던지고 경기에 임하듯이, 우리 역시 신앙의 길을 가로막는 세상의 욕심이나 유혹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 길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꾸준히”(히브 12,1) 달려야 하는 장거리 경주이기에, 인내와 끈기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경주를 완주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비결은 바로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히브 12,2)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영광스러운 기쁨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셨습니다. 우리가 삶의 고통 속에서 낙심하고 지쳐버릴 때,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그 모든 적대 행위를 견뎌내신 예수님을 기억한다면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셨지만 하느님의 손으로 다시 살아나셨듯이, 우리의 고난 역시 하느님의 손길로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가 말하듯, 죄에 맞서 싸우는 우리의 싸움은 아직 예수님처럼 “피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히브 12,4)습니다.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믿음의 완성을 향해 끝까지 나아가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분열은 단순한 갈라섬이 아니라, 참된 평화를 향한 역설적인 과정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불'**은 성령, 사랑, 그리고 심판을 상징합니다. 이 불은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이며, 죄를 태워 없애고 굳은 마음을 녹이며 우리를 새롭게 정화시킵니다. 그러나 이 불은 모든 이가 기쁘게 받아들이는 불이 아닙니다. 진리를 거부하고 자기 이익을 지키려는 사람들 앞에서, 그 사랑의 불은 갈등과 분열을 불러옵니다.
**중국 고사성어 “和而不同(화이부동)”**은 **“조화를 이루되 무조건 같아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참된 평화는 진리 위에 세워지며, 거짓과 타협하는 일치는 평화가 아니라 위장된 안정에 불과합니다. 마하트마 간디는“비폭력은 소극적인 무저항이 아니라, 진리를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용기이다” 라고 했습니다. 또한 윈스턴 처칠은 “평화는 진실을 무시하는 대가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화는 진실 위에만 세워진다” 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분열은 바로 이런 용기, 곧 진리를 선택할 때 불가피하게 겪는 갈라섬입니다.
우리 모두가 진리를 선택할 때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이 거룩한 분열과 아픔을 잘 받아 들일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허락해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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