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론

희망의 시작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마르 9, 30-37)

Author
신부님
Date
2021-09-17 22:20
Views
741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2021년 9월 19일 일요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마르 9, 30-37)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 9, 35)

오늘 우리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미사를 봉헌합니다. 먼저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오늘 복음은 내가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질문하게 하는 복음입니다. 주어진 신앙에서 선택한 신앙으로 바꾸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부모님의 신앙에서 나의 신앙으로의 변화입니다. 세상적인 성공의 추구에서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의 추구입니다.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로 다가간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묵상합니다.

야고버 사도는 “하느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그러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여 주실 것입니다.”(야고 4,8. 10) 하고 알려 줍니다. 즉, 자신과 세상과 우애를 쌓는 삶이 바로 하느님과 적의를 쌓는 것(야고 4, 5)이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과 멀어지는 삶을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느님께로 가까이 간다고 하는 것은 세상과 우애를 쌓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우애를 쌓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하느님께 복종하고 악마에게 대항하는 (야고 4, 7)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첫째가 되는 삶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로부터 파견 받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파견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파견 받은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신 그 사명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 이외에는 누구도 보이지 않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누구에게도 먼저 다가가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다가오기를 원합니다. 교만은 사람을 파멸에로 이끌어 간다고 말합니다. 교만한 사람의 주변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높이고 잘났다고 하는 사람에게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 외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여주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을 칭찬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먼저 하느님께로 가까이 가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물리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버선 발로 그 사람을 맞기 위해서 달려가시는 분이십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우리는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아들을 맞기 위해서 달려가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봅니다. 옷을 입혀 주시는 아버지 신발을 신겨 주시는 아버지 그리고 반지를 끼워 주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봅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 9, 35)

내가 하느님 때문에 꼴찌가 되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면 하느님께서 나를 첫째로 만들어 주신답니다. 그런데 키 재기를 해 보면, 지상에서 제일 높은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보면 가장 낮은 사람이고 지상에서 제일 낮은 사람은 하늘에서 가장 높은 사람입니다.

어쩔 수 없이 꼴찌가 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느님 때문에 내가 꼴찌를 선택해야 합니다. 종과 같이 자신의 의지가 아닌 주인의 의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꼴찌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비움의 영성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비움이 하늘에서 채움이 됨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마르 9, 31) 하고 말할 때 제자들의 관심은 말씀의 앞 부분에 멈추었습니다. 세상적인 관심에서 하느님의 영역으로의 옮겨가지 못했기에 부활에 대한 확신 보다는 두려움과 불안이 그들에게 엄습해 옵니다.

부활의 영광은 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버리지 못하기에 이 말씀의 참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그들 중에 누가 가장 큰 사람인가에 대해서 논쟁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논쟁에 어린아이를 데리고 와서 이 아이를 받아들이라고 하십니다.  참 성공은 바로 세상의 이해를 뛰어 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비움의 영성이 자리해야 함을 알려주십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을 지내면서 악마에게 저항하고 하느님께 순명하며  하느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삶을 살고자 다짐합니다.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는 비움의 영성을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다시 한번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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