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론

희망의 시작 - 연중제 23주간 - 거룩한 기회비용(루카 14,25 - 33)

Author
신부님
Date
2022-09-02 17:05
Views
869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연중 제 23주간

2022년 9월 4일 일요일

거룩한 기회비용(루카 14,25-33)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 26-27)

세상에 공짜란 없다고 합니다.  사랑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 가정 먼저 떠오는 사랑은 아가페 와 에로스의 사랑입니다. 대조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는 자기 중심적인 사랑이며 하나는 조건없이 베푸는 사랑입니다. 

이 두 사랑에 대해서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자기 중심적인 사랑은 자신은 전혀 내어 놓음이 없이 소유할려고 하는 사랑이라면 무조건적인 사랑은 상대로부터 어떤 것도 취함이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 놓는 사랑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사랑에 익숙해 있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 26 -27)는 이 말씀은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일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인 것입니다. 자신의 것을 내어 놓지 않을려고 하는 그 마음이 십나가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서 나아가십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왜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피하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가는이유”를 우리에게 묵상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이 여정에  많은 군중이 예수님의 뒤를 따라갑니다. 그 사람들은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군중심리 때문에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러한 단순한 호기심이나 군중심리 때문에 이 피정 저피정을 찾아서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피정을 찾아 다니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왜 그러한 피정을 찾아 다니는 지가 중요할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에수님이 가시는 십자가의 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내것을 내어놓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받을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더 큰 축복과 더 큰 기적을 찾아서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닙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향해서 참으로 당신을 따르고자 한다면 하느님의 축복과 기적과 영광 만을 원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부활의 영광 만을 추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함께하는 부활을, 고통과 수난의 텃밭에서 피어나는 부활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 17장 1절에서 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당신의 세 제자, 즉 베드로와 야고버와 그의 동생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 위로 데리고 가십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셨는데,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예수님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습니다.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를 본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구름이 그들을 덮고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자신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는 간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봅니다. 26절에서 27절의 말씀입니다.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 25-26)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조건은 먼저 가족이라는 개념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서 사용하고 있는 ‘미워한다’로 번역한 ‘miseo’라고 하는 그리스 말의 원래의 의미는 ‘초월하다, 이탈하다, 단절하다.’ 등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모와 형제 자매라는 이 개념을  넘어서라는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우리 모두는 한 형제 자매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혈연적인 경계를 넘어서는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부인하는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로 나아가고자 하는 나의 뜻을 가로막는 개인적인 욕심이나 탐욕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공사를 시작해서 중간에 그만두는 것과 같이 예수님을 따르다가 중도에 그만 둘 것이라면 예수님을 따르지 말라고 하십니다. 즉 신앙생활을 시작하면 중도에 그만두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나가서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이면에는 나의 것을 버리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것으로 채워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거룩한 기회비용을 기꺼이 부담하도록 예수님께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Total 411
Number Title Author Date Votes Views
411
New 희망의 시작 - 부활 제 4주 - 착한 목자의 조건(요한 10,11-18)
신부님 | 2024.04.19 | Votes 2 | Views 93
신부님 2024.04.19 2 93
410
New 희망의 시작 - 부활제 3주 - 나약한 인간, 회개하는 인간(루카 24, 35- 48)
신부님 | 2024.04.19 | Votes 0 | Views 3
신부님 2024.04.19 0 3
409
희망의 시작 - 부활 제 2주일 (요한 20, 19-31)
신부님 | 2024.04.05 | Votes 5 | Views 422
신부님 2024.04.05 5 422
408
희망의 시작 - 주님 부활 대축일 낮 미사(요한 20, 1-9)
신부님 | 2024.03.30 | Votes 2 | Views 467
신부님 2024.03.30 2 467
407
희망의 시작 - 부활 성야미사 (마르 16, 1-7)
신부님 | 2024.03.28 | Votes 3 | Views 523
신부님 2024.03.28 3 523
406
희망의 시작 - 성지주일 (마르 15, 1- 15, 39)
신부님 | 2024.03.21 | Votes 1 | Views 410
신부님 2024.03.21 1 410
405
희망의 시작 - 사순제 5주간 - 섬기는 사람의 조건(요한 12, 20 - 33)
신부님 | 2024.03.16 | Votes 2 | Views 505
신부님 2024.03.16 2 505
404
희망의 시작 - 사순 제 4주간 - 구원에 이르는 합당한 조건
신부님 | 2024.03.07 | Votes 2 | Views 447
신부님 2024.03.07 2 447
403
희망의 시작 - 사순 제 3주일 - 성전의 참의미를 간직하는 삶(요한 2, 13 - 25)
신부님 | 2024.03.01 | Votes 1 | Views 372
신부님 2024.03.01 1 372
402
희망의 시작 - 사순제 2주간 -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가 주는 의미(마르 9, 2-13)
신부님 | 2024.02.23 | Votes 4 | Views 487
신부님 2024.02.23 4 487

Enquire now

Give us a call or fill in the form below and we will contact you. We endeavor to answer all inquiries within 24 hours on business d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