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에(마태 12, 46-50) - 1771

Author
kchung6767
Date
2019-11-20 01:00
Views
1791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묵상 - 1771

2019년 11월 21일 목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에(마태 12, 46-50)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 49-50)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입니다.  먼저 모든 마리아 본명을 지닌 여러분과 동시에 당신의 딸을 하느님께 봉헌했던 안나와 요아킴 부부를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계신 여러분 모두에게도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말은 쉽지만 말대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매번 강론대에 설 때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선포하면서 나는 이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 때문입니다.

죽음을 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죽음을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도 세상을 너머의 것을 바라보아야 하는 삶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입니다. 하지만 세상너머의 것을 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이 자꾸 고개를 돌려서 세상을 봅니다.

혈연을 뛰어넘어야 하는데 혈연이 보입니다. 선을 긋지 말아야 하는데 선을 긋습니다. 구별과 분리의 습관이 죽음을 넘어서야 하는 우리를 자꾸 죽음의 한계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주님 안에서 거듭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새롭게 거듭나는 삶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후서 5장 17절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고 말씀하십니다.

경계를 뛰어 넘는 삶입니다. 이 새로움에 대해서 새 것이라는 의미로 그리스 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시간적 의미에서의 새로움은 네오스입니다. 시간이 가고 새로운 시간이 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질적인 새로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은 카이노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새로움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가능함을 보여줍니다. 세상적인 관념의 경계를 하느님 안에서의 경계로 바꾸는 삶을 살도록 초대하십니다. 세상은 자꾸 안으로 안으로 선을 긋도록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밖으로 밖으로 이 경계를 열도록 하십니다. 주님 안에서 새롭게 거듭나지 않으면 주님의 초대에 응답할 수가 없슴을 깨닫습니다.

가족은 인간이 갖고 있는 가장 배타적인 구별의 장입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것이기에 이 가족의 벽을 넘어서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이러한 가족의 확장의 개념에는 봉헌의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지 못하면 받아들이지도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가족의 개념을 제시해 줍니다. 혈연을 넘어서 열려진 가족의 개념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시하는 형제의 개념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 50)는 말씀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형제가 자매이고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혈연을 넘어서 하느님께로 향하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로 열려진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순종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은 서로 형제 자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바라본다면 하느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느님 나라에서는 결혼하는 일도 없고 형제자매의 육적인 관계는 없다는 말씀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오로지 존재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 만이 하느님의 나라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로 당신의 주변에서 당신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는 이 사람들이 바로 당신의 어머니이고 형제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육적인 관계의 가족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죽음을 앞두고 요한에게 당신의 어머니를 부탁하시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단지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 인간적인 사랑에 우선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이 두 사랑은 대립적인 관계의 사랑이 아닌 차원이 다른 사랑일 뿐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자리에 자신이나 세상적인 것들을 두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걱정하는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것들이 필요함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먼저 하늘나라와 하느님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것들은 곁들여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마태 6, 33). 이러한 믿음의 실천이 혈연적인 배타적인 형제의 틀에 매여 있는 우리를 하느님 안에서의 열려진 형제적인 개념에로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와 우리 가족들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과사랑 안에서 열려진 사고로 예수님께서 알려주시는 가족의 참의미를 실천하는 하루 되시도록 기도합니다. 또한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다시 한번 축하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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