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잃어버린 정체성을 회복하는 삶(루카 19, 45 - 48) - 2388

Author
신부님
Date
2021-11-17 23:48
Views
1114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388

2021년 11월 19일 금요일

잃어버린 정체성을 회복하는 삶(루카 19, 45 - 48)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루카 19, 46)

코로나 19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실천해야 했던 사회적인 거리두기와 마스크를 쓰는 삶을 통한 우리의 일상의 변화는 참으로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제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거리두기와 마스크를 쓰는 삶으로 인한 폐해가 우리의 일상 깊은 곳에까지  무의식 중에  스며들어 있슴을 발견합니다.

이러한 거리두기와 마스크를 쓰는 삶은 인간에 대한 기대와 신뢰보다는 더욱더 견고하게 자기 중심적인 삶으로 변하게 하였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네 탓이야 하며 손짓을 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불신의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가 서로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내 탓이고 내 큰 탓이다.’라고 반성해야 합니다. 내 자신 역시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불신의 사회가 있게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고향을 방문할 때 옛날 내가 살던 때의 고향을 생각하면 안됩니다. 내가 변화한 것보다 더 나의 고향은 변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 만을 생각하면 자신의 변화를 잘 느끼지 못합니다. 타인을 통해서 나의 변화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몇 년전 이 맘때 로마를 다녀왔었습니다. 당시 베드로 성당을 방문하면서 놀랐던 것이, 거의 10년 만의 방문이었는데 과거를 생각하면서 방문한 로마는 너무나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특히 베드로 성전을 방문했을 때 세월의 흐름만큼 많은 변화가 있었슴을 느길 수가 있었습니다. 

제일 큰 변화는 검문 검색의 강화였습니다. 예전에는 접근이 가능했던 장소들이 지금은 접근제한 구역이 많아졌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그러한 이유에는 그만큼 인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그만큼 지금의 세계가 인간에 대한 신뢰심을 잃게한다는데 있을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일들로 인해서 마음은 무거웠지만 성체조배를 하면서 그리고 혼자서 기도하면서 주님의 사랑을 참으로 깊이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주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느낌이었습니다. 이 느낌을 깊이 간직하면서 살아야 겠다고 생각했엇습니다.

당시에 가졌던 다짐들을 반성해 봅니다. 나름 주님 안에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여전히 부족한 부분들이 있슴을 보게 됩니다. 보여지는 세상은 더욱 나빠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어둠이 깊어지면 새벅은 더욱 가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잃지 말라’고 말씀을 통해서 초대하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은 4 복음서에 다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의 배치가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이 사건을 예수님의 수난 직전에 있었던 일로 기록하고 있는데 반하여 요한복 에서는 예수님 공생활의 첫 과월절 때에 있었던 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의 배치가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서와 다르다고 하여 이 사건이 담고 있는 의미와  가르침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 내십니다.  이 성전이 장사하는 사람들의 장터가 된 이유는 유대인들의 역사적인 관습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당시의 유대인 남자들은 3대 축제일이 되면 예루살렘에 와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따라서 멀리서 오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먼 길을 소나 양을 끌고 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동물들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먼길을 아무런 문제 없이 끌고 온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이렇게 먼 거리를 끌고 오다보면 제물로 바칠 소나 양이 병들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사를 드릴 때는 흠없는 희생제물을 드려야 하는데 흠없는 제물을 바친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전 앞에서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사면 편리하기도 하고, 흠없는 제물도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제물용 짐승들을 파는 상점들과 장사꾼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환전상들인데, 당시는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것은 로마 화폐인 드라크마였습니다. 그런데 그 돈의 앞 면에는 로마 황제인 카이사르의 얼굴이 새겨져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카이사르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돈을 하느님께 바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카이사르 자체가 신으로서 숭배 되었기 때문에, 하느님께 카이사르의 얼굴이 그려진 돈을 드리는 것이 합당치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돈을 바꾸어주는 환전상들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한다면 성전에 이러한 장사가 시작된 것은 나름대로 하느님께 흠없는 제물, 깨끗한 돈을 바치게 하려고 배려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점점 변질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초심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던 마음에서 이제는 자신이 우선이 되는 것입니다. 순수한 마음이 이해를 따지는 마음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먼저 제물이 흠이 없는지를 판결하는 것은 제사장들의 권한이었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보기에는 흠이 없는 짐승을 갖고 왔어도 제사장들이 거부하면 제물로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반대로 조금 흠이 있지만 제사장이 동의하면 제물로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원래는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시장이나 성전 밖에서 팔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것이 허용된 것입니다. 제사장들과 상인들 사이에 검은 거래로 성전 안으로까지 들어와 성전 뜰에서 제물용 짐승들을 팔고 성전세를 환전해주는 장사꾼들이 장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성전을 거룩하게 보존해야 하는 자신들의 본연의 임무 보다는 재물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성전을 세속의 장터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성전의 거룩함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러한 성전의 성전됨의 상실에 예수님의 분노가 극에 달했던 것입니다.  우리 몸 역시 주님의 성전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어떻게 보존해야 할 지를 오늘 복음서는 우리에게 잘 알려 줍니다.

성전인 나의 몸과 마음이 성전 됨의 본질을 잃지 않는 것이. 하느님과 나 사이에 신뢰를 회복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신뢰의 회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자 다짐하며 이를 실쳔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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