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두 대조적인 자유의 모습 (마태 23, 1-12) - 3143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143
2024년 2월 27일 화요일
두 대조적인 자유의 모습 (마태 23, 1-12)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마태 23,11-12)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추세를 거슬러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눈 앞에 있는 모든 세상적인 유혹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이러한 유혹에 넘어집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 신앙이 나의 삶을 구속하는 족쇄가 된다는 생각을 갖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유하겠다고 주님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주님을 떠나 참 자유를 향유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실제는 세상의 종이 되어 버렸습니다. 완전함 속에서 불완전으로 살아가던 사람이 불완전 속에서 불완전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불완전 속에 갇힌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는 세상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었는데 주님으로부터의 자유 함은 나를 세상의 노예가 되게 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다시 주님의 품 안으로 돌아 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온몸과 마음을 당신께로 들어올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길을 성찰하고 반성하여 주님께 돌아가세, 손과 함께 우리의 마음도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 들어 올리세(애가 3, 40-41)하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인간은 누구나 높아지고 존경받고 쥐고 싶은 욕망을 갖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것들의 성취가 자신의 행복을 보장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욕망을 자신의 대에서 이루지 못하면 대대로 자신의 욕망을 대리 만족시킬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의 행복 추구와는 정 반대의 행복 추구의 길을 제시하십니다. 이러한 길을 따르기 위해서는 세상적인 기준의 유혹에서 벗어나 주님의 종이 되는 삶을 살아야 만이 가능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이제는 세상을 보지 말고 하늘을 보도록 초대하십니다. 세상으로부터 자유하는 삶을 살도록 초대하십니다.
한국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모든 관심이 총선으로 집중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만은 좋은 국회의원들이 선촐되어 정치가 국민들께 희망을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아래의 말씀은 새롭게 당선될 국회의원들의 덕목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마태 23,11-12)
귀를 열고 듣는 사람도 닫는 사람도 이 말씀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명심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경중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의 가르침은 다 실행하고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들의 행실은 따라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들은 말만하고 실행하지는 않기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무거운 짐을 다른 사람들에게 지우고 공개석상에서 인사받기만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은 분리된 계급이 아니라 바리사이파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광의적으로는 바리사이라고 하면 율법학자까지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삶의 양식을 호되게 비판하시는. 에수님의 이러한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잘 압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애가서의 말씀을 외워봅니다
“우리의 길을 성찰하고 반성하여 주님께 돌아가세, 손과 함께 우리의 마음도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 들어 올리세.(애가 3, 40-41) 하는 이 말씀을 마음에 담고 세상으로부터 자유하는 삶을 살고자 다짐합니다. 비록 지금은 모든 것을 잃는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주님 안에서 영원한 소유를 보장 받는 삶임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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