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성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마르 5, 21- 43) - 2808

Author
신부님
Date
2023-01-29 21:17
Views
956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808

2023년 1월 31일 화요일

성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마르 5, 21- 43)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마르 5, 34)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뜻은 서로 상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참으로 너무나 다릅니다. 인간의 상식에 합당하면 하느님의 뜻에 부합하는가 하는 것과 같은 질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상식은 완전자와 유한자의 차이만큼이나 다릅니다.

예를 들면 안중근 의사는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최고의 애국자이지만 일본사람의 입장에서는 원수일 것입니다. 그만큼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인간의 생각은 변한다는 것입니다. 참 진리는 시공을 초월하여 언제나 변함이 없고 옳은 특징을 갖고 있슴을 우리 그리스도인은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입니다. 오늘 축일을 맞는 여러분 모두와 살레시오회 수도원의 수사님들과 수녀님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 져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습니다.  “딸아”하고 부르시는 그 말씀이 너무나 다정하게 다가옵니다. 그 순간 동심으로 돌아가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집니다. 저 부르심이 바로 저를 부르시는 것 같습니다.

믿음은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오늘 이 복음에 나오는 여인은 열 두해 동안이나 하혈을 하면서 살아온 사람입니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 많은 의사를 찾아 다녔지만 효력은 없고 오히려 상태만 더 나빠졌다고 합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이러한 체험을 많이 합니다. 결국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 여인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빛을 봅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찾아갔을 때 예수님은 수 많은 군중에 둘러싸여 계십니다. 이 여인의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는 대단합니다. 앞으로 다가갈 수가 없으니까 예수님 뒤로 가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댑니다.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는 굳은 믿음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이 여인이 생각하는 구원은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구원과는 의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당신에게서 힘이 빠져나간 것을 깨달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하고 물으십니다. 이 부인은 두려워 떨면서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믿음을 보십니다. 그래서 구원을 주십니다. 구원은 바로 평화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평화의 조건은 바로 그 여인에게 있어서는 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녀에게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냥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는 말씀으로도 충분한데 이렇게 길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묵상해 보면, 평화와 육체적인 치유입니다.  즉 그녀는 몸과 마음이 모두가 치유가 되었습니다. 바로 전인적인 구원을 말합니다. 앞에서 여인이 기대한 구원이 육체적인 치유였다면 예수님의 구원은 몸과 마음의 치유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회당장에게 말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들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과 함께 회당장의 집으로 가십니다.

소녀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눈에는 죽음이지만 하느님의 눈에는 자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언어와 하느님의 언어는 다릅니다. 죽은 것이 자는 것이고 어쩌면 자는 것이 죽음이기도 할 것입니다. 어쨌던 예수님께서는 이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탈리타 쿰!”하고 말씀하십니다. 이말은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물론 소녀는 죽음을 틀고 즉시 일어나 걸어다닙니다. 죽음마저도 예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을 세 제자는 목격하게 됩니다.

앞에서의 ‘구원’과 ‘죽음에서의 일어남’은 같은 말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탈리타 쿰’  무엇으로부터 일어납니까? 우리를 죽음에로 이끄는 모든 것으로부터 지금 이 순간 일어나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초대에 요한 보스코 성친처럼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다시 한번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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