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마태 16, 13-19) - 1647

Author
kchung6767
Date
2019-06-28 04:40
Views
1068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647

2019년 6월 29일 토요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마태 16, 13-19)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 15)

오늘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입니다. 먼저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분들께 축하를 드립니다.

사람이 자신을 되돌아 보면서 내가 참으로 의미있는 삶을 살아왔구나 하면서 만족하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현재에서 과거를 돌아 보는 것은 이를 통해서 새로운 미래의 삶을 설계하기 위해서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은 과거를 되돌아 보면서도 만족을 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의 눈에 비친 그의 화려한 과거도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언제나 상대적인 ‘더 나음’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생을 낙관적이고 긍정적으로 살기가 힘든가 봅니다.

그리스도인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영원한 삶에 대한 희망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희망이 있는 사람과 희망이 없는 사람과의 차이는 행복과 불행의 차이와 같을 수 있습니다. 희망이 있는 사람은 긍정적으로 살아갑니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불평과 불만으로 살아갑니다. 이러한 삶의 모습이 우리의 얼굴에 반영됩니다. 그래서 얼굴은 우리의 삶의 결과의 거울인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청춘인 것 같은데 어느 순간에 중년을 훨씬 지났습니다. 과거의 삶의 궤적을 되둘아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의 삶에 개입하셨다는 수 많은 흔적들을 발견합니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저는 하느님의 개입하심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 흔적들이 저의 얼굴을 통해서 나타날 것입니다. 저의 얼굴의 한 부분 부분이 지난날의 삶의 역정들을 잘 말해 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고. 사실은 그런 것 같습니다. 본인도 그러한 체험을 할 때가 가끔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열려진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할 때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하는 질문을 하십니다. 이천년 전의 질문이 지금도 생명력을 가지고 우리의 가슴을 향하고 있습니다. 매번 이 질문을 접할 때마다 질문의 무게가 달리 느껴짐은 삶을 그만큼 많이 살았다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어쨌던 그분의 질문에 항상 똑 같은 대답을 하지만 그 대답에 담겨진 내용은 다릅니다. 이제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이 질문에 다시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천년 전 이 질문이 제기 되었던 당시의 상황을 잘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기가 참으로 힘들었던 그 상황에서 용기있게 주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제자들의 태도가 존경스럽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질문의 답을 이미 예견하고 계셨기에 이와 더불어 답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알려주십니다. 따라서 그분을 ‘그리스도’이시라고 답하는 사람은 자신을 죽이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그 분을 따르겠다는 다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가 하느님께로 다시 가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이 보여주셨던 그 삶의 모습들을 알고 있기에 그분이 그리스도이심을 당시의 제자들 보다는 쉽게 응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연히 로마에서 공부할 당시의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모습이라곤 거의 찾아보기 힘든 모습입니다. 이 사진을 보고“너는 누구이냐?” 하고 자문해 봅니다.

 현재의 자신과 당시의 자신과의 다른 모습 안에서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가에 대한 총체적인 답이 필요할 것입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에게 일어났던 많은 변화 중에서 아픔과 어둠의 기억들을 제외하고 긍정적인 기억 만을 간직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기억들도 지금의 내가 있게 하는데 한 역할 했다는 사실에 이제는 더 이상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축복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만큼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20년 후의 나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나의  이웃에게 보여지게 될  나의 모습은 어떠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두려운 마음이 생깁니다. 사제로서의 모습이 담뿍 베어있는 모습이기를 희망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과거보다는 더욱 치열하게 자신을 죽이고 자신에게 부과된 고유한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가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지금의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흔적이 깊이 베어있는 모습으로 변화되어 있기를 기대합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이천 년 전의 질문을 ‘하느님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 ‘ 하는 질문으로 바꾸어 봅니다. ‘저는 하느님의 종입니다.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하고 말씀하시는 성모님의 바램이 저의 바램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바램이 일상에서 베어나는 하루를 살고자 다짐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질문에 “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더욱 자신있게 고백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다시 한번 오늘 축일을 맞으시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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