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하느님의 뜻을 찾는 기도 (마태 10,1-7) - 1656

Author
kchung6767
Date
2019-07-09 10:14
Views
1149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묵상 - 1656

2019년 7월 10일 수요일 

하느님의 뜻을 찾는 기도 (마태  10,1-7)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마태 10,5-7) 

예수님께서 열 두 사도를 뽑으시는 오늘의 복음 내용은 공관복음은 다 다루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루카 복음은 예수님께서 열 두 사도를 뽑으시기 전에 산에 가셔서 혼자서 밤새워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저에게는 마태오 복음에서 비록 전하고 있지는 않지만 루카 복음서에서 전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밤새워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예수님께서 왜 기도가 필요하실까 하는 질문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일을 하실 때마다 자신의 뜻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알고자 노력하십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깨닫습니다. ‘나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찾는 것이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을 찾으시는 이유는 아버지의 뜻을 찾기에 좋은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즉 아버지의 뜻을 찾기 위한 장소의 조건은 한적하고 고독한 장소이고 당신과 아버지 단 둘이 있기에 방해 받지 않는 장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자의 선택이라는 중대사를 두고서 당연히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을 찾으셨을 것입니다.  당신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찾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현재의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배울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살피시고 난 뒤에  제자들 가운데서 당신의  열 두 사도들의 면면을 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제자들의 선택입니다. 바로 여기에 하느님의 뜻의 신비가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사고와 하느님의 생각의 차이가 있슴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나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찾는 것이 기도이고 이 기도는 바로 우리를 순명으로 이끌어 감을 보게 됩니다. 신앙인이란 바로 기도하는 사람이고 순명하는 사람임을 깨닫게 됩니다. 

‘아는 것이 힘’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많이 아는 것이 힘이고 출세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러한 사람이 성공을 가져다 준다고 이들을 찾는 것이 바로 현대 사회의 경향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이러한 추세가 가져다 주는 심각한 문제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는 것이 힘’인 사회에서는 인간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 만이 보입니다. 그래서 다시 ‘인간을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눈은 ‘아버지의 뜻을 찾는 것’에서 나옵니다. 매사에서 아버지의 뜻을 찾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부르십니다.  이런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아갑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들은 어떠한 사림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뽑으신 당신의 제자들 면면을 보면,  세상적인 관점으로 보면,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눈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다른 요소들이 있었나 봅니다.  아버지의 뜻에 순명한 예수님의 눈이 있었습니다.  외적인 조건을 보시지 않고 내적인 조건을 보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 속에 아버지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좋은 조건을 가졌다면 이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그렇게 즉각적으로 응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들을 예수님께서는 사도라고 이름하셨다고 합니다.  사도라는 말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사도를 그리스 말로 ‘아포스토로스’라고 합니다. 이 말의 어원을 따져 보면,  ‘어떤 존재로부터 파견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 어원에 기초한 사도의 의미를 설명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먼저, 파견하는 존재가 있어야 하고 둘째는 이들이 파견된 사명이 있고 마지막으로 세째는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파견자의 현존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의 이름을 사도라고 한 것은 바로 이들이 사도로서의 삶에 가장 합당한 사람들이라는 확신을 가지셨을 것입니다. 

이들을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함께 머물게 하시면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도 주십니다. 그러면서 사도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열 두지파를 상상하게 하는 열 두 사도의 세우심은 이제는 과거에서 미래로 열려진 열 두지파를 상상하게 합니다. 미래로 열려진 교회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제 당신과 함께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생각하게 합니다. 

새로운 아침에 “나는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 질문에 ‘예’하고 응답하는 하루이기를 기대합니다. 바로 하늘나라가 이미 와 있슴을 나의 삶을 통해서 이웃에게 전하는 하루이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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