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루카 17, 1- 6) - 1762

Author
kchung6767
Date
2019-11-10 03:22
Views
1386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762

2019년 11월 11일 월요일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루카 17, 1- 6)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오늘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보여지는 예수님의 모습은 용서의 예수님 이십니다. 오늘복음의 시작은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는 한계적인 존재이기에 죄를 안 짓고 살아갈 수는 없을 뿐만 아니라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생길 수 박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남에게 죄를 짓게하는 일이 당연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러한 일을 하게 된다면 당나귀가 돌리는 큰 맷돌인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는 것입니다. 남을 죄짓게 하는 것에 대한 심판이 참으로 무서움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읽다 보면,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부인 저라고 성경말씀 전부를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 전부터 성경말씀을 필사하는 움직임이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말씀을 쓰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말씀을 써보면서 말씀과 좀 더 가까워짐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해가 안되는 많은 부분들이 있슴을 발견하기도 한답니다. 성경 필사를 시작하지 않았으면 이해 안되는 부분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의문이 있으면 의문이 있는 그대로 그 의문을 마음에 담고 지나 간다고 합니다. 본인 역시 성경말씀을 읽다가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일단은 마음에 묻어두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다시금 읽게 되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입니다. 용서에 대한 말씀입니다. 탈출기를 보면, 동태복수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많이 인용하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 과 같이 동일한 형태로 복수를 하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복수를 말하지만 복음서에는 용서를 말합니다. 이해하기가 힘들지요. 그 대표적인 부분을 인용을 해 봅니다.

“22 사람들이 서로 싸우다 임신한 여자와 부딪쳤을 경우, 그 여자가 유산만 하고 다른 해가 없으면, 가해자는 그 여자의 남편이 요구하는 대로 벌금형을 받아야 한다. 그는 재판관을 통해서 벌금을 치른다. 23 그러나 다른 해가 뒤따르게 되면, 목숨은 목숨으로 갚아야 하고, 24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25 화상은 화상으로,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탈출 21, 22-25)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마태 5, 38-42)

이 두  대조적인 내용을 두고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하고 묵상을 해봅니다. 여태까지는 전혀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읽다가 어느순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두 곳에서 누구에게 말씀하시는가 하는 것이 이해의 키 포인트임을 깨닫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준 사람(가해자)에게 하시는 말씀이고 피해를 받은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즉 피해를 준 사람에게는 그만큼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을 강조하시고 피해를 받은 사람에게는 용서와 사랑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너무나 단순한 것이지만 이 차이를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접하다 보면, 지금은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완전하고 무한하신 하느님을 불완전하고 유한한 존재인 우리가 어떻게 완전하게 이해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분의 도우심으로 참 의미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모름을 모름으로 인정하고 지금은 넘어가는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그 겸손함이 말씀을 더욱 사랑하게 하는 동기가 될 것입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와 우리 가족들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자신이 책임을 져야하는 경우에는 부족함을 인정하고 책임을 부담하고 사랑과 용서를 실천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기쁘게 이를 실천하는 거룩한 하루 지내시도록 기도합니다. 다시 한번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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