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하느님의 정의와 진정한 자유(마태 13, 54 - 58) - 3697
이른아침에 읽는 말씀 - 3697
2025년 8월2일 토요일
하느님의 정의와 진정한 자유(마태 13, 54 - 58)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마태 14, 4)
오늘 우리가 들은 레위기 말씀과 마태오 복음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하느님의 정의와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한편으로는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공동체의 정의로운 질서인 희년을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세례자 요한의 삶을 통해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마태오 복음 14장 4절,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라는 구절은 진리를 향한 세례자 요한의 불굴의 용기와, 하느님의 법 앞에서 그 어떤 권력도 예외일 수 없음을 선포하는 하느님의 정의가 담겨 있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불의한 권력에 맞서 진실을 외쳤고, 이로써 육신의 자유는 잃었지만 영혼의 진정한 자유를 얻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레위기 말씀과 마태오 복음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하느님의 정의와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공동체의 정의로운 질서인 희년을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세례자 요한의 삶을 통해 말입니다.
레위기 25장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희년(禧年)’의 계명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50년마다 돌아오는 이 희년은 단순히 한 해를 쉬는 것을 넘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해입니다.
"너희는 이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한 해로 선언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의 희년이다. 너희는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고, 저마다 자기 씨족에게 돌아가야 한다." (레위 25,10)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모든 것의 진정한 주인이심을 선포하며, 인간의 탐욕과 불평등으로 인해 왜곡된 사회 질서를 치유하려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계획을 보여줍니다.
빚으로 인해 팔려간 토지는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고, 종살이하던 이들은 자유를 얻어 자기 씨족에게 돌아갑니다. 이는 빈부 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을 막고, 모든 이가 하느님 안에서 동등한 존엄성을 지니고 있음을 선포하는 하느님의 정의입니다.
"너희는 동족끼리 속여서는 안 된다. 너희는 너희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 (레위 25,17)
이 말씀은 경제적 관계에서도 하느님의 정의가 구현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어지는 마태오 복음은 헤로데 영주의 부도덕한 권력과 그에 맞서 진리를 외쳤던 세례자 요한의 비극적인 순교를 전합니다. 요한은 헤로데의 불법적인 결혼을 꾸짖으며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마태 14,4) 하고 용기 있게 진리를 선포했습니다. 그는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을 용감하게 전했습니다.
요한은 비록 육체적으로는 감옥에 갇히고 결국 목숨을 잃었지만, 그의 영혼은 진리 안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웠습니다. 반면 헤로데는 군중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맹세 때문에 괴로워했지만, 결국 불의를 택했습니다. 이 비극은 인간의 나약함과 불의한 권력이 어떻게 진실을 억압하고 무고한 생명을 해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희년은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정의로운 사회 시스템을 보여주는 반면, 세례자 요한은 그 정의를 개인의 삶에서 실천한 예언자적 인물입니다. 두 이야기 모두 인간의 탐욕과 불의가 하느님의 질서를 깨뜨리려 하지만,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정의와 진리가 승리하며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가져온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비극이었지만, 그의 정의는 결국 승리한다는 메시지는 사라지지 않았고 예수님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또한, 미국의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어디에서든 불의는 모든 곳의 정의에 대한 위협이다." (Injustice anywhere is a threat to justice everywhere.) 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희년이 공동체 전체의 정의를 추구했듯이, 한 개인에 대한 불의가 결국 사회 전체의 자유와 평화를 위협한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되고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개인이나 이익집단들의 이익을 위한 도구화는 일상화 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윤 추구만을 우선시하는 경향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체의 연대 의식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또한, 진실이 왜곡되거나 진실 앞에서 침묵하는 현실 속에서 세례자 요한과 같이 용기 있게 진리를 외치는 목소리가 더욱 절실합니다. 이러한 현실은 희년의 정신과 요한의 삶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임을 보여줍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일상 안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경제적 약자를 돌보고, 불의에 침묵하지 않으며, 진실을 말하는 용기를 가질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처럼, 우리도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준비하는 이 시대의 예언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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