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망의 시작 - 후회와 회개의 차이(루카 10, 13 - 16 )- 3749
Author
신부님
Date
2025-09-30 04:02
Views
672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749
2025년 10월 3일 금요일
후회와 회개의 차이(루카 10, 13 - 16 )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루카 10,13)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잘못을 깨닫고 난 뒤의 태도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하나는 후회이고, 다른 하나는 회개입니다.
후회는 자신의 잘못을 마음 아파하며 되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어 버리기 때문에 과거에 갇혀 자기 자신을 탓하는 데서 끝날 뿐입니다. 회개는 다릅니다. 회개는 잘못을 인정한 뒤, 방향을 바꾸어 다시 하느님께 나아가는 결단입니다. 눈물이 아니라 발걸음으로 증명되는 것이 회개입니다. 단순히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는 용기입니다.
유다의 모습과 베드로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후회하는 인간의 모습과 회개하는 대표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후회의 결과와 회개의 결과의 극단적인 모습도 보게 됩니다.
오늘 제1독서 바룩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 앞에 드린 참회의 기도를 들려줍니다.
“주 우리 하느님께는 의로움이 있지만, 우리 얼굴에는 오늘 이처럼 부끄러움이 있을 뿐입니다.”(바룩 1,15)
그들의 고백은 절망이 아니라 용기입니다. 자신들의 불순종과 우상 숭배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동시에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그들을 이끌어 주신 구원의 역사를 기억합니다. 바로 이 기억이 후회를 회개로 바꿔 놓습니다. 잘못을 직시하면서도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하느님께 돌아가려는 길을 찾기 때문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코라진과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을 향해 탄식하십니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루카 10,13.15)
이곳은 예수님께서 수많은 기적을 일으키신 도시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은총을 받고도 그 은총이 회개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무거운 말씀을 던지십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신 것은 단순한 놀라움이나 감탄이 아닙니다. 기적을 보고 후회하는 것에 머무르는 것도 아닙니다. 그분께서 바라신 것은 은총이 회개로 이어지고, 삶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다.”(루카 10,16)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을 통해 선포되는 말씀은 곧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건네시는 초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각자 안에도 ‘코라진’과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이 있습니다. 은총을 많이 받았지만 여전히 변하지 못한 마음의 자리, 하느님 말씀을 듣고도 모른 척 지나친 순간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눈물만 흘린다면 그것은 후회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방향을 돌이킨다면 그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작은 방향 전환에서 시작됩니다. 미워하던 이를 향해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 내 욕심을 내려놓고 나누는 것,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던 기도의 자리를 회복하는 것, 바로 그 작은 행동 속에 참된 회개의 힘이 숨어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를 두렵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하느님께 돌아올 수 있는 은총의 시간임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얼굴에 남아 있는 부끄러움은 하느님께 나아가는 문이 됩니다. 그 부끄러움을 하느님 앞에 내어놓을 때, 후회는 회개로 변하고, 눈물은 새로운 발걸음이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시고, 생명과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2025년 10월 3일 금요일
후회와 회개의 차이(루카 10, 13 - 16 )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루카 10,13)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잘못을 깨닫고 난 뒤의 태도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하나는 후회이고, 다른 하나는 회개입니다.
후회는 자신의 잘못을 마음 아파하며 되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어 버리기 때문에 과거에 갇혀 자기 자신을 탓하는 데서 끝날 뿐입니다. 회개는 다릅니다. 회개는 잘못을 인정한 뒤, 방향을 바꾸어 다시 하느님께 나아가는 결단입니다. 눈물이 아니라 발걸음으로 증명되는 것이 회개입니다. 단순히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는 용기입니다.
유다의 모습과 베드로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후회하는 인간의 모습과 회개하는 대표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후회의 결과와 회개의 결과의 극단적인 모습도 보게 됩니다.
오늘 제1독서 바룩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 앞에 드린 참회의 기도를 들려줍니다.
“주 우리 하느님께는 의로움이 있지만, 우리 얼굴에는 오늘 이처럼 부끄러움이 있을 뿐입니다.”(바룩 1,15)
그들의 고백은 절망이 아니라 용기입니다. 자신들의 불순종과 우상 숭배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동시에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그들을 이끌어 주신 구원의 역사를 기억합니다. 바로 이 기억이 후회를 회개로 바꿔 놓습니다. 잘못을 직시하면서도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하느님께 돌아가려는 길을 찾기 때문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코라진과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을 향해 탄식하십니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루카 10,13.15)
이곳은 예수님께서 수많은 기적을 일으키신 도시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은총을 받고도 그 은총이 회개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무거운 말씀을 던지십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신 것은 단순한 놀라움이나 감탄이 아닙니다. 기적을 보고 후회하는 것에 머무르는 것도 아닙니다. 그분께서 바라신 것은 은총이 회개로 이어지고, 삶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다.”(루카 10,16)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을 통해 선포되는 말씀은 곧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건네시는 초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각자 안에도 ‘코라진’과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이 있습니다. 은총을 많이 받았지만 여전히 변하지 못한 마음의 자리, 하느님 말씀을 듣고도 모른 척 지나친 순간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눈물만 흘린다면 그것은 후회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방향을 돌이킨다면 그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작은 방향 전환에서 시작됩니다. 미워하던 이를 향해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 내 욕심을 내려놓고 나누는 것,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던 기도의 자리를 회복하는 것, 바로 그 작은 행동 속에 참된 회개의 힘이 숨어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를 두렵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하느님께 돌아올 수 있는 은총의 시간임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얼굴에 남아 있는 부끄러움은 하느님께 나아가는 문이 됩니다. 그 부끄러움을 하느님 앞에 내어놓을 때, 후회는 회개로 변하고, 눈물은 새로운 발걸음이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시고, 생명과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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