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비교대신 사랑을 선택하는 삶(사무엘기 상 18,6-9; 19,1-7 / 마르 3,7-12) - 3842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842
2026년 1월 22일 목요일
비교대신 사랑을 선택하는 삶(사무엘기 상 18,6-9; 19,1-7 / 마르 3,7-12)
“더러운 영들은 그분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마르 3,11)
우리의 일상은 비교하는 삶의 연속입니다. 이 비교는 숫자를 좋아합니다. “수천”과 “수만”, 팔로워 수, 평수, 연봉의 앞자리 같은 숫자들이 어느 순간 우리를 재단하고, 결국 우리 마음을 감옥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오늘 제1독서(사무엘 상 18,6-9. 19,1-7 )에서 사울 왕이 바로 그 마음의 감옥에 갇힙니다. 골리앗을 물리치고 돌아오는 길, 여인들이 노래합니다.
“사울은 수천을 치시고 다윗은 수만을 치셨다네!”(1사무 18,7)
이 노래는 사실 공동체의 승리를 기뻐하는 축제의 노래였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그 기쁨을 ‘우리의 승리’로 받지 못하고, ‘자신의 체면’으로 받아들입니다. 그 순간 숫자는 축복의 언어가 아니라 독이 됩니다. 성경은 “그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의심의 눈으로 보았다.”(1사무 18,9)고 말합니다.
시기심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시기심은 상대의 선의를 악의로 번역해 버리고, 나를 돕는 이조차 적으로 보이게 합니다. 그래서 시기심은 상대를 먼저 넘어뜨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내가 먼저 무너집니다. 내 평화가 먼저 죽고, 내 기도가 먼저 탁해지고, 내 관계가 먼저 깨집니다. 결국 시기심은 “남을 이기려는 마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갉아먹는 마음”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 독서에는 사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나단이 있습니다. 요나단은 왕위 계승자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다윗은 경쟁자입니다. 비교의 논리라면 제거해야 할 사람입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다윗을 “제 목숨처럼 사랑”했고, 아버지 사울의 분노 앞에서 다윗을 변호하며 생명을 지켜 줍니다(1사무 19장 참조). 요나단은 타인의 빛이 나의 어둠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증명합니다. 비교가 아니라 우정으로, 경쟁이 아니라 사랑으로 관계를 살립니다.
오늘 복음(마르 3,7-12)에는 수많은 군중이 예수님께 몰려옵니다. “손이라도 대려고” 밀려듭니다(마르 3,10). 이들은 세상의 기준에서 밀려난 병자들과 소외된 이들입니다. 세상은 그들에게 ‘뒤로 가라’고 말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피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세상이 매긴 등수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라는 절대적 가치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몸만 낫게 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다시 사람답게 일으켜 세우는 하느님의 손길입니다.
여기서 묘한 장면이 하나 나옵니다.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을 보고 엎드려 외칩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마르 3,11)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지 못하게 하십니다(마르 3,12). 왜일까요? 예수님은 ‘소문’이나 ‘숫자’로 당신을 증명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군중의 열기나 인기의 크기로 자신을 세우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하느님의 방식으로 당신이 누구신지 드러내십니다.
사울과 예수님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사울은 숫자 때문에 흔들리고, 숫자 때문에 사람을 의심합니다.
예수님은 숫자에 흔들리지 않으시고, 숫자 밖으로 밀려난 이들을 품으십니다.
우리는 사울을 비난하기 전에, 우리 안의 사울을 먼저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요나단의 길, 예수님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늘 비교의 전장으로 끌려가지만, 주님은 우리를 비교의 감옥에서 풀어 주십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기도합니다.
주님, 저희 마음이 비교와 시기심에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요나단처럼 사랑의 편에 서게 하시고, 예수님처럼 사람을 살리는 눈을 갖게 하소서.
오늘 저희 입술이 시기심이 아니라 축복을 말하게 하시고,
저희 마음이 경쟁이 아니라 감사로 살아 있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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