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2사무 1,1-4.11-12.19.23-27/마르 3,20-21) - 3844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844
2026년 1월 24일 토요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2사무 1,1-4.11-12.19.23-27/마르 3,20-21)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마르 3, 20)
오늘은 ‘저술가와 언론인의 수호성인’이자 ‘온유함의 성인’으로 불리는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입니다.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오늘 우리는 제1독서의 다윗과 복음의 예수님, 그리고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만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거룩한 광기(狂氣)’입니다.
오늘 복음(마르코 복음 3,20-21)은 매우 짧지만 강렬합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시느라 식사할 겨를도 없으시자, 친척들이 그를 붙들러 나섭니다. 그들의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그가 미쳤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적당히 자기 몸을 사리지 않고 무언가에 몰입하는 것은 ‘광기’로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 광기는 파괴적인 미침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고자 하는 ‘지독한 사랑의 몰입’ 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 역시 당대에 이와 비슷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종교 개혁의 광풍이 몰아치던 시절, 가톨릭에 적대적이었던 샤블레 지역으로 발령 받은 그는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외면하고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하지만 성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밤새 직접 쓴 교리 편지를 문틈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지금의 우리의 눈으로 보면, ‘가성비가 전혀 없는 비효율적’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랑은 효율을 따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오직 ‘대상’만을 바라봅니다. 예수님이 그러하셨고, 살레시오 성인이 그러하셨습니다. 저도살아 가면서 한 번쯤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저 사람 좀 미친 거 아니야?”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의 열정을 갖고서 일상을 살았으면 하는 바랭을 가져 봅니다.
제1독서(2사무엘 1,1-27)에서 다윗은 자신을 끈질기게 괴롭혔던 사울 왕의 죽음 소식을 듣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제야 살았다”며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옷을 찢으며 슬퍼하고 애가를 지어 부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다윗의 열정이 ‘승리’에 있지 않고 ‘하느님의 질서’에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울이 비록 자신을 박해했어도, 그는 하느님께서 기름 부으신 이였습니다. 다윗은 인간적인 원한을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승화시켰습니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바로 이 지점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하느님 안에서 그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열정이 아니라 본능입니다. 그러나 나를 비난하고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 안에서 ‘하느님의 모상’을 찾아내어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성인이 보여준 ‘초자연적인 사랑의 열정’입니다.
우리는 열정적인 사람을 보면 목소리가 크고 추진력이 강한 사람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열정의 에너지를 ‘온유함’ 이라는 그릇에 담아냈습니다. 그는 본래 불같은 성격이었지만,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일 자신을 다스려 ‘유럽에서 가장 친절한 신부님’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20세기 성녀,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할 뿐입니다.”
살레시오 성인의 영성 또한 이와 같습니다. 그는 수도자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평신도들도 일상 속에서 성인이 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거창한 순교가 아니더라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에 한 번 더 웃어주는 것, 비난하고 싶은 순간에 입을 닫고 기도를 시작하는 것—이것이 바로 성인이 말한 ‘일상의 열정’입니다.
그는 “한 방울의 꿀이 한 통의 식초보다 더 많은 파리를 잡는다” 고 말하며, 엄격함보다는 자애로움이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도구임을 몸소 증명했습니다.
식사조차 잊으신 예수님의 열정, 원수의 죽음 앞에 옷을 찢은 다윗의 숭고함, 그리고 냉대 속에서도 온유함의 편지를 썼던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삶은 모두 한곳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바로 “나를 태워 세상을 따뜻하게 하라” 는 부르심입니다.
성인의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의 열정이 단순히 나 자신의 만족이나 성취를 향한 이기적인 욕망이 되지 않고 오직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의 구원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무엇을 하든 사랑을 위해서 하십시오.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는 이 말씀을 마음 속에 간직하면서 ‘온유함’이라는 이름의 뜨거운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시 한번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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