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그만큼’의 삶을 넘어 ‘그 이상’의 삶으로 (신명 26,16-19/마태 5,43-48) - 3874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874
2026년 2월 28일 토요일
그만큼’의 삶을 넘어 ‘그 이상’의 삶으로 (신명 26,16-19/마태 5,43-48)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 5,48)
사순 시기를 지나며 우리는 회개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은퇴 신부님들이 사시는 사제관으로 이사를 한 지도 일주일이 되어 갑니다. 주변환경이 연로하신 신부님들께서 지내시기에 알맞게 조성된 곳이라 생활하는데 조금도 불편함이 없습니다. 새로운 인생을 이곳에서 시작할 수 있게 해 주신 주님과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곳 주변을 산보하면서 지난 날의 삶을 되돌아 보는데 ,이해인 수녀님의 ‘사랑의 결심’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미워하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미움은 나를 갉아먹고 상대를 죽이는 독약임을 알기에,
비록 상처 입었을지라도
그 상처를 꽃으로 피워내기로 결심합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끝까지 견디고 품어 안는 의지의 선택임을 고백합니다."
이 시구처럼, 사랑은 우리에게 밀려오는 따뜻한 감정이 아니라, 때로는 피를 흘리면서도 멈추지 않는 ‘의지의 선택’ 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주교님 역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짐승들도 하는 일이다. 그러나 너희가 원수를 사랑하는 것, 그것은 오직 하느님만이 하시는 일이며, 너희가 그분을 닮았음을 증명하는 길이다.”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신명기 26장 16-19절과 마태오 복음 5장 43-48절의 말씀은 바로 이 ‘하느님을 닮는 사랑’, 즉 세상의 상식을 뛰어 넘는 ‘그 이상의 사랑’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명기 26장 16-19)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의 법을 지키라고 권고합니다.
“오늘 주 너의 하느님이 이 규정과 법규들을 실천하라고 너에게 명령하신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것들을 명심하여 실천해야 한다.” (신명 26,16)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오늘’입니다. 계약은 과거에 맺어진 박제된 약속이 아닙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새롭게 갱신되어야 하는 현재진행형의 사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특별한 소유’(신명 26,18)로 삼으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보석 같은 존재가 된 이유는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기로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앙인의 삶은 그 과분한 사랑에 대한 ‘응답’이어야 합니다. 적당히 형식만 갖추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는’ 전인적인 투신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은 그 투신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사람들의 상식을 뒤엎는 말씀을 하십니다.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마태 5,43-44)
유다인들에게 이웃은 오직 동족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경계를 허무십니다. 우리는 흔히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것을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이방인들의 예를 드시며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마태 5,47)
위에서 인용한 아우구스티노 주교님의 말씀처럼, 이 물음은 우리 신앙의 현주소를 묻는 뼈아픈 질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으면서도, 사랑의 범위가 세상 사람들과 똑같다면 우리는 아직 하느님의 완전하심에 발을 내딛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세상의 기준을 뛰어넘는 ‘탁월함’에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감정의 한계를 넘어 하느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겠다는 의지적인 결단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신 이유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마태 5,45)
하느님의 사랑에는 ‘조건’과 ‘차별’이 없습니다. 우리는 해를 받을 자격이 있어서 햇빛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비를 맞을 자격이 있어서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분이 사랑이시기에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가 원수를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느님을 닮기 시작합니다.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축복하는 순간, 우리는 나를 묶고 있던 미움의 사슬에서 풀려나 하느님의 자유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결론적으로 말씀하신 완전함의 정체입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 5,48)
이해인 수녀님이 노래했듯,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만 머물던 좁은 사랑의 울타리를 걷어내고, 하느님께서 모두에게 비를 내려주시듯 우리도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이들을 향해 마음의 창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사랑의 한계선’을 긋고 삽니다. “이 정도면 됐지”, “이 사람만큼은 도저히 안 돼”라고 선을 긋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그 선을 지우라고 초대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제1독서가 말하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님의 법규를 실천하는 것’(신명 26,16 참조)이며,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힘만으로는 결코 ‘완전’해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도와주신다면, 하느님의 그 끝없는 자비를 조금씩 흉내 낼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를 힘들게 하던 사람들을 위한 기도가 우리를 살리고 세상을 정화하는 강력한 도구가 됨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세상의 논리가 아닌 복음의 논리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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