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 조건(이사 49,8-15/요한 5,17-30) - 3889

Author
신부님
Date
2026-03-16 06:44
Views
465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889

2026년 3월 18일 수요일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 조건(이사 49,8-15/요한 5,17-30)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요한 5,24)

사순 시기는 마치 긴 터널과도 같습니다. 처음에는 어둡고 길게 느껴지지만, 끝이 가까워질수록 멀리서 희미한 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 터널의 끝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수난을 깊이 묵상할수록 역설적으로 우리의 신앙은 때때로 정체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기도는 더디게 응답되는 것 같고, 마음속에서는 이런 질문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내 고통의 순간에 그분은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오늘 이사야서와 요한 복음은 바로 이러한 질문에 대해 깊은 위로의 답을 들려줍니다. 그 핵심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단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다.”

오늘 제1독서(이사 49,8-15)는 바빌론 유배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위로의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은혜의 때에 내가 너에게 응답하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다.” (이사 49,8)

여기서 ‘은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촌(Rāṣôn) 은 단순한 시혜나 호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기꺼운 호의와 사랑의 갈망, 곧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는 열정적인 의지를 의미합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억지로 구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길 잃은 자녀를 찾아 헤매는 부모처럼, 우리를 다시 품에 안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포로들에게 “나와라”(이사 49,9) 하고 부르시고, 어둠 속에 있는 이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어라”(이사 49,9) 하고 외치십니다. 그분은 단순히 길을 알려 주시는 분이 아니라 친히 “샘터로 이끌어 주시는 분”(이사 49,10) 이십니다. 그러나 절망 속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은 이렇게 탄식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이사 49,14)

그때 하느님께서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유 가운데 하나로 응답하십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이사 49,15)

하느님은 더 나아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나는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겨 두었다.”(이사 49,16)

고대 근동에서 손바닥에 무언가를 새기는 행위는 결코 잊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와 소유의 표시였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고통 속에서 “하느님이 나를 잊으셨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손을 바라보실 때마다 우리의 이름을 보시며 우리를 기억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오늘 복음(요한 5,17-30)에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다는 이유로 유다인들에게 박해를 받으십니다. 그들은 율법의 문자에만 매달려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드러내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여태껏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17)

여기서 “일하다”라는 헬라어 에르게자스다이(ergazesthai) 는 단순한 노동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보존하고 생명을 살리는 창조적 활동을 뜻합니다. 유다교 전통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창조 후 일곱째 날에 쉬셨지만, 생명을 유지하고 심판하시는 일은 결코 멈추지 않으신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하느님의 생명 사역에 당신이 동참하고 계심을 밝히십니다. 그리고 그 일의 핵심은 단 하나입니다. 생명을 주는 것.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살린다.”(요한 5,21)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단순한 생물학적 생존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 곧 헬라어로 조에(Zōē) 입니다. 죽음의 그늘 아래 있던 이들이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살아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안에서 이루고 계시는 거룩한 노동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신앙생활에서도 ‘결과’에 집착합니다. 기도가 즉시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느님이 나를 잊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칩니다. 하느님께는 ‘부재’라는 시간이 없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생명의 에너지입니다.

이사야가 말한 “손바닥에 새겨진 기억” 과 예수님이 선포하신 “아버지의 일” 은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기억하시기 때문에 일하십니다.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는 “하느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지만, 우리가 그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으신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시련과 고통은 하느님이 손을 놓으셨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삶을 더 아름답게 빚어 가시는 하느님의 손길이 가장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그분은 우리 안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참된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요한 5,24)

여기서 “건너갔다”는 말은 헬라어 메타베베켄(metabebēken) 으로 완료 시제입니다. 이것은 구원이 미래의 불확실한 사건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사건임을 뜻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우리는 이미 죽음의 영토에서 생명의 영토로 국경을 넘어온 존재입니다. 사건은 이미 완료되었고 그 효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생명을 향해 달려가는 삶이 아니라 이미 생명 안에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우리는 흔히 구원을 ‘죽은 뒤에 받는 보험’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이 말하는 구원은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이사야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손바닥에 새겨져 있고, 요한 복음의 말씀처럼 이미 생명으로 건너간 존재라면 우리의 삶은 완전히 달라져야 합니다.

절망과 죄책감은 죽음의 영토의 언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그 영토를 떠나 생명의 나라로 귀화한 사람들입니다. 사순 시기는 바로 그 신분 변화를 다시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하느님의 일에 협력하는 첫 번째 방법은 그분의 목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세상의 소리나 절망의 목소리가 아니라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않는다” 라고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게 됩니다.(요한 5,24)

마하트마 간디는 “미래는 우리가 현재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현재’란 단순한 시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지금 내 안에서 하시는 일에 순명하는 시간입니다.

주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이 사랑을 믿으며 우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지쳐 쓰러져 있을 때에도
당신은 저를 위해 일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제 눈을 열어 당신의 일하심을 보게 하시고
제 귀를 열어 당신의 생명의 목소리를 듣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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