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시선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민수 21,4-9/ 요한 8,21-30)- 3894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894
2026년 3월 24일 화요일
시선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민수 21,4-9/ 요한 8,21-30)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요한 8,24)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희망에는 두 명의 아름다운 딸이 있다. 그 이름은 분노와 용기다. 현실이 지금 이대로여서는 안 된다는 것에 대한 '분노'와,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용기'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쏟아낸 원망은 안타깝게도 이 거룩한 '분노'가 아니라, 하느님의 선하심을 의심하는 '불평'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눈앞의 척박한 현실을 이겨낼 '용기' 대신, 과거의 종살이를 그리워하는 퇴보를 선택했습니다.
인간은 참으로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존재입니다. 평화로울 때는 하느님의 은혜를 노래하다가도, 조금만 상황이 힘들어지거나 길이 험해지면 금세 마음이 조급해지고 원망의 말을 쏟아냅니다.
오늘 제1독서(민수 21,4-9)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구해내신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기억하기보다, 당장 발밑의 거친 광야 길과 입에 맞지 않는 음식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져서" 하느님과 모세를 원망합니다.
그 결과 그들은 '불뱀'에 물려 죽어갑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원망한 그들을 사지로 내몰지 않으시고, 다시 살 길을 열어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장대 위에 높이 달린 '구리 뱀'을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뱀에 물렸을 때 구리로 만든 뱀의 형상을 본다고 나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본 사람은 살았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진리를 전합니다. 구원은 나의 논리나 상식이 아니라,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고개를 들어 그분을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요한 8,21-30)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당신의 정체를 드러내십니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요한 8,23)
우리가 세상적인 판단 기준과 아집에 사로잡혀 있을 때, 우리는 '아래'에 속한 자들입니다. 아래에 속한 이들은 눈앞의 고난과 결핍에만 집착하며, 그 너머에 있는 하느님의 섭리를 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인지, 즉 "내가 나(I AM)"임을 믿지 않으면 죄 속에서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여기서 '나'는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야훼 하느님의 신성한 이름입니다. 즉, 십자가에 높이 들려 올려지실 예수님이 바로 우리를 구원하실 하느님이심을 믿어야 한다는 초대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내가 가진 주관적인 사고의 틀을 하느님의 객관적인 틀로 바꾸는 과정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십자가는 실패와 수치의 상징이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가장 큰 사랑이자 승리의 상징입니다. 고난의 자리 바로 곁에 위로가 있고, 슬픔의 자리 가장 가까이에 기쁨이 숨겨져 있음을 깨닫는 것, 이것이 바로 '위에서 오신 분'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법입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마음이 상하고 조급해질 때가 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가"라며 원망이 터져 나올 때, 다시 한번 고개를 들어 장대 위에 높이 들리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은 우리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려고 애쓸 때, 하느님 아버지께서 늘 우리와 함께 계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나의 시선이 땅바닥의 불뱀(불평과 원망)에 머물러 있는지, 아니면 치유와 생명의 십자가를 향해 있는지 성찰해 보았으면 합니다. 내가 '나'의 한계에 갇히지 않고 주님의 말씀 안에 머물 때, 우리는 비로소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주님, 저희의 눈을 열어 주시어 십자가 뒤에 숨겨진 당신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원망과 불평의 입술을 닫고, 고난 중에도 저희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시는 당신의 현존을 믿으며 묵묵히 생명의 길을 걷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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