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종말론적인 삶(루카 21, 12-19) - 1776

Author
kchung6767
Date
2019-11-26 05:41
Views
1460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776

2019년 11월 27일 수요일

종말론적인 삶(루카 21, 12-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 19)

최근에 한국 사회를 통해서 드러나는 문제 중의 하나가 ‘옳고 그름’과  ‘좋고 싫음’에 대한 이슈가 큰 화두가 되고 있슴을 보게 됩니다.  처음 이 주제를 대하면서 비슷한 것 같은데 하면서 조금 생각을 하면서 큰 차이가 있슴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이슈가 작금의 한국의 사회적인 갈등의 뿌리에 있슴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혹자는 ‘좋고 나쁨’의 논제를 갖고서 진영의 논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옳음과 그름’의 주제를 윤리 도덕적인 측면에서 접근함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접근법을 택하고 있을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선택은 옳음과 그름의 접근법이기도 하지만 더욱 정확한 접근법은 바로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것’ 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루카 복음 21장은 이 세상의 종말, 이 세상의 마지막 때에 되어 질 일들에 관한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무서움과 두려움으로 읽기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종말론적인 삶을 말합니다. 이 종말론의 삶의 확실한 준비가 바로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삶’ 입니다ㅣ.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는 종말을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하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빈다. 종말이란 이 세상의 끝이고 새로운 세상의 시작인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승리한 삶을 살아간 사람들에게는  이 새로운 세상이 바로 하늘나입니다. 우리는 종말을 양면으로 이해합니다. 새로 오시는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심판하러 오시는 것과 또 다른 측면에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늘나라는 예수님의 오심과 함께 이 세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와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상에서 이 하늘나라를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와 있는 하늘나라가 완성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완성은 다시 오시는 예수님과 함께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땅에 값비싼 보석이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사람은 그 보석을 소유하기 위해서 그 땅을 살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땅을 살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것이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을 내어 놓더라도 그 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늘나라가 좋다는 사실을 안다면,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소유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와 있는 하늘나라를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고 체험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종말론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종말론적인 삶이란 일상에서 오늘 주님이 재림하실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삶이란 바로 종말을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이 장소와 시간에서 미리 당겨와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이미 와 있는 하늘나라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이 주인이 되시는 삶입니다.

이미 와 있는 하늘나라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현존하는 세상적인 폭력이나 즐거움에 동요 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적인 박해와 폭력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것이 위협적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영원한 삶과 행복에 영향을 못끼친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주인이 되시는 삶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갑니다.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우리의 것은 우리가 구분하는 지혜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미래의 삶에 대해서는 하느님께 맡깁니다. 현재의 삶에서는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 때문에 가족들 사이에 친구들 사이에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많은 오해와 박해와 갈등이 생겨남을  감당해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영적인 가치관의 차이이고 세상적인 행복과 하늘나라의 행복이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참 행복은 외적인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충만함에 있슴을 우리는 잘 압니다. 소유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어 놓음에 있슴을 잘 압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목숨마저도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내어놓을 준비를 하고 살아갑니다. 나약한 우리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 의지하는 삶을 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와 우리 가족들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비록 지금은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지만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 19)는 이 말씀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면서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거룩한 하루 지내시도록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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