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안드레아 사도 축일에 (마태 4, 18-22) - 1779

Author
kchung6767
Date
2019-12-02 04:17
Views
28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779

2019년 11월 30일 금요일

안드레아 사도 축일에 (마태 4, 18-22)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20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마태 4, 15)

 인간은 창조 당시부터 관계의 동물이었습니다. 이는하느님의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는 말씀을 통해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바로 그 여인이  하와였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와를 데리고 오시자 아담은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하고  부릅니다.  이 두 사람은 인류 최초로 가정을 이룹니다.

이상적인 관계가 인간이 범한 죄로 인하여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탓하는 관계로 타락합니다. 급기야는 이들에게서 난 자녀들 사이에서 살인까지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셨던 이상적인 관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내가 중심이 아닌 하느님께서 나의 삶의 중심이 되는 관계의 회복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안드레아 사도 축일입니다.  안드레아 본명을 갖고 계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베드로의 동생인 안드레아 사도는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분이십니다. 인간을 참 행복의 근원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성인을 보면서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분을 믿고 신뢰하기에 예수님께로 사람들을 데려올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민족만큼 혈연과 지연과 학연과 같은 폐쇄적인 관계를 맺기를 좋아하는 민족은 없을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선을 긋기를 좋아하는 우리가 세상을 향하여, 이웃을 향하여 열린 마음을 갖고 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열린 마음을 갖고 살 것을 강조하십니다.

안드레아 사도가 예수님을 처음 만나서 그분을 따랐던 것은 바로 첫 눈에 예수님을 알아보고 받아 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열린 마음은 믿음에 조건을 달지 않습니다. 믿음은 이성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도저히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고 불확실한 것을 예수님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바로 이러한 믿음을 강조하십니다. 언제나 믿음의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결정적인 시기만 되면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이 믿음 생활입니다. 이 말은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하지만 세상적인 이해와 신앙생활이 겹치게 되면 먼저 놓는 것이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태 4, 19)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똑 같은 방식으로 예수님께서는 조금 더 가시다가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버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그들도 부르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은 이들이 자신들의 중요한 생계 수단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과 동시에 에수님께서 왜 이들을 뽑으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당시의 관습으로 보면, 어부는 참으로 천대받는 직업 중의 하나였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3D 업종 중의 하나였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좀 더 능력이 있는 사람들 찾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게서는 스펙이 화려하고 겉으로 드러난 능력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뽑으신 이유는 바로 그 다음 문장에서 깨닫을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예수님의 부르심에 곧바로 응답합니다. 이 부사 ‘곧바로’는 어떠한 주저함이나 망설임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복음서의 말씀대로 이해한다면 이들이 전에 예수님을 만난 기록이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기록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요한이 잡히고 난 뒤에 갈릴래아에 가셔서 복음 선포하셨는데 이 복음선포의 말을 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설령 그들이 이러한 예수님의 선포를 들었다 하더라도 어떻게 순간의 망설임이나 주저함도 없이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직업마저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겠습니까.

상황이 어쨌던 부르심은 예수님의 절대 권한이고 이에 대한 응답은 부르심을 받은 사람의 자유의지에 달려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보시고 부르실 때 예수님의 마음과 이들이 예수님을 봤을 때 예수님에 대한 신뢰의 마음이 상호작용을 하고 있었디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서로가 서로에게 부름과 응답으로 답할 수가 있게 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 앞부분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잡힌 뒤에 갈릴래아로 가셔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였다고 합니다. 그 복음의 말씀이란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 이들을 부르실 때 이들의 회개하는 마음과 믿음의 마음을 보셨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들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님에 대한 신뢰와 새로운 삶을 향한 열정의 표현일 것입니다.

이들이 굳이 그물과 아버지를 버려두고 갔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포기해야 하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우리는 세상과 가족을 포기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 늫는 것은 하느님의 더 큰 축복의 약속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외적인 화려함을 당신의 제자가 되는 조건으로 삼지 않으시고 우리의 내면과 미래의 가능성으로 우리를 초대해 주시는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따르는 거룩한 하루 지내시도록 기도 합니다.   다시 한번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를 드리고 사도의 삶의 모범이 여러분의 삶으로 드러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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