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언행일치의 삶(마태 7,21. 24-27) - 1782

Author
kchung6767
Date
2019-12-03 20:49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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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782

2019년 12월 5일 목요일

언행일치의 삶(마태 7,21. 24-27)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 간다.(마태 7, 21)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면 사회 지도층에 속하는 사람들, 특히 정치인들의 언행 불일치는 이들에 대한 실망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될 개연성을 갖게 하는 우려가 있기도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잘 압니다. 약한 우리는 믿음을 고백 하면도 의심을 하기 때문입니다. 의심이 전제된 믿음은 사탄이 원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하느님께서는 나의 힘이 되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의 삶이 힘듬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통해서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브람과 사라이는 하느님께서 자신들에게 자식에 대한 약속이 10년이 지나도 이루어지지 않자 마침내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의심을 갖게 됩니다.  당시의 관습에 따라서 사라이는 아브람에게 “여보, 주님께서 나에게 자식을 갖지 못하게 하시니, 내 여종과 한자리에 드셔요. 행여 그 아이의 몸을 빌려서라도 내가 아들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창세 16, 2)하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약속에 의심이 생긴 사라이는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자식을 갖지 못하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지 십년이 지나도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자 나름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그런데 아브람 역시 사라이의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불신에 기초한 사라이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불신은 이제 서로가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나아갑니다. 결국에는 이러한 불신이 평화로운 가정 공동체를 깨어버립니다.

하느님께서 주인이셨던 삶에서 이제 하느님은 없어지고 ‘나’ 만 남았기에 아브람의 아이를 갖게 된 종이었던 하가르는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고서 제 여주인을 업신여겼습니다. 그래서 사라이가 아브람에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이렇게 부당한 일을 겪는 것은 당신 책임이에요. 내가 내 여종을 당신 품 안에 안겨주었는데, 이 여종은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나를 업신여긴답니다. 아, 주님께서 나와 당신 사이의 시비를 가려 주셨으면!” 합니다. 이러한 사라이의 말에 아브람은 “여보, 당신의 여종이니 당신 손에 달려 있지 않소? 당신 좋을 대로 하구려.” 하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사라이가 하가르를 구박하니, 하가르는 사라이를 피하여 도망쳤다.(창세 16, 2-6) 고 합니다.

이렇게 가정 공동체가 어떻게 깨어지는가를 우리에게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께서는 한 번 약속하신 것은 꼭 지키신다는 믿음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이러한 믿음에서 자유로와져야 한다고 유혹을 합니다. 하느님의 종이 되는 삶은 참 자유하는 삶이지만 하느님으로부터 자유하는 삶을 선택하면 세상의 노예가 됨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님이신 하느님으로 믿는다는 일종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따라서 위에서 ‘주님, 주님’하고 부른다는 것은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믿는다는 것과 동시에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으로 믿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고 믿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즉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버 사도는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17).”하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뜻이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자신이나 자신이 판단하는 사람들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자신을 들여다보면 깨닫게 됩니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한 말이면 최선을 다해서 지킬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하지만 부족함이 많았슴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지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못 지켰을 때의 태도는 더욱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자신이 지키지 못한 이유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먼저 변명할 구실을 찾는 모습을 봅니다. 변명을 해서 덮다 보면 더욱 정교한 변명이 필요한 경우가 생깁니다. 거짓을 덮기 위해서 더 큰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의 표현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한 말을 꼭 지킬려고 하는 사람은 쉽게  그리고 함부로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말을 할 때 어휘를 선택함에도 격려와 생명의 언어를 사용할 것입니다.

옛날에 천사와 악마가 한 마을에 살았답니다. 그런데 천사는 너무 못 생겼고 악마는 사람들이 반할만큼 잘 생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못생긴 자를 천사라고 불렀고 잘생긴 자를 악마라고 불렀습니다. 어떻게 사람들은 둘을 이렇게 구별했을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외모를 본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천사와 악마를 구별했기 때문이랍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탄은 우리가 상상하듯이 머리에 뿔이 달린 흉악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악마도 처음에는 천사로 만들어져서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에 교만함이 생졌을 때 악마로 변했습니다. 마음속에 욕심과 탐욕이 생길 때 천사가 마귀가 된 것입니다.

상냥한 말은 꿀 송이 목에 달콤하고 몸에 생기를 준다. (잠언 16, 24)

사악한 사람은 싸움을 일으키고 중상꾼은 친구들을 갈라놓8는다. (잠언 16, 28)

위의 말들처럼 말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도 슬픔을 줄 수도 있습니다. 희망을 줄 수도 있고 절망에 빠지게도 합니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는 말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아야 합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와 우리 가족들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말로써 믿음을 고백하는 삶이 아니라 삶으로 믿음을 고백하는 삶을 살아가는 거룩한 하루 되시도록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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