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불행선언(마태 23, 13-22) - 1696

Author
kchung6767
Date
2019-08-25 10:08
Views
1131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696

2019년 8월 26일 월요일

불행선언(마태 23, 13-22)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마태 23, 13).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언행일치의 삶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십니다.  이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이 쉽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특히 우리와 같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삶의 요체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바로 전 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마태 23, 12)라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불행선언을 시작하십니다. 불행선언을 시작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지칭하시면서 ‘위선자’라는 말을 덧붙이십니다.

위선의 의미에 대해서 국어사전에서는 여러가지의 의미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로  “겉으로만 착한 체를 하거나 거짓으로 꾸밈”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의미로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을 비판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에수님께서 불행하다고 하신 이유는 위선적인 삶 때문입니다. 7가지의 불행선언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위선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다른 복음서에 나오는 14절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엄한 단죄를 받을 것이다.”는 말을 고려한다면 8가지의 불행선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진복8단과 불행선언 8가지는 예수님께서 대조적으로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좀 더 쉽고 명확하게 제시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이 불행선언의 첫 번째가 바로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마태 23, 13).” 입니다.

취직철만 되면  제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는 한국의 대기업에서 나와서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회사설명회를 하면서 인재영입에 열을 올립니다. 그런데 저를 슬프게 하는 것은, 비록 자신의 회사에서는 필요하지 않은 인재이지만 경쟁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마저도 채용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전략이 경쟁회사에서 이들을 활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인지 모르지만 채용된 그 사람을 위해서나 정작 이들을 필요하는 회사에게는 불행한 일일 것입니다.

몇년 전 교황님께서 한국을 방문하시면서 남기신 메시지 가운데 경제에 대해서 언급하신 것은 바로 ‘상생’입니다. 함께 잘 사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나누어 갖고 고통도 분담하는 정신입니다. 그런데 기업의 이윤의 논리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자신은 살고 상대는 죽여야 하는 것이 일방의 생존전략인 것입니다. 이 천년 전의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의 삶의 태도가 여전히 존재함을 보게됩니다.

남을 탓하기 이전에 나를 들여다 봅니다. 교만이 위선을 만들어 냅니다. 겸손의 삶이 체화되지 않으면 이러한 유혹은 언제나 나를 이길 것입니다. 나를 높이고 자신을 드러낼려고 하는 유혹은 참으로 뿌리깊은 나무입니다. 그렇기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언제나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비록 자신은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나의 이웃은 들어가게 배려하는 삶, 바로 오늘 제가 실천해야 하는 겸손한 삶의 시작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바오로와 동료 실바누스와 티모테오는 테살로나카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 때문에 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크게 자라나고 저마다 서로에게 베푸는 여러분 모두의 사랑이 더욱더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테살 후 1, 3).하고 말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가 이제는 나 때문에 있었으면 하는 바랭입니다. 좀 더 믿음이 자랐으면 합니다. 그 믿음때문에 더욱 큰 사랑을 실천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예수님의 이 불행선언이 나에게 적용이 되지 않는 하루가 되기를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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