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마태 17, 10-13) - 1790

Author
신부님
Date
2019-12-13 07:44
Views
1439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790

2019년 12월 14일 토요일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마태 17, 10-13)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마태 17, 11-12)

오늘은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입니다.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와 계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 이미 있슴에도 찾는 것은 바로 눈은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는 있어도 듣지 못함에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이 있습니다. 특히  오래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자아를 세워온 사람들에게 이러한 현상이 있슴을 봅니다. 자신에게 숨겨진 교만의 씨앗이 자신을 예수님으로 교묘하게 둔갑시키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에 의하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과 하나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히고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로마 6, 4).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제는  자신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닫힌 사고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의 눈과 귀로 보고 듣고 사고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신앙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에서 하느님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됨을 알려주십니다.  만사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유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담겨진 원래의 의미를 깨닫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복음 바로 앞에서 당신의 영광스러운 변모를 통해서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베드로와 야고버와 요한에게 드러내십니다. 이를 통해서 제자들은 믿게 되었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율법학자들이 그릇된 주장을 하는 것에 대해서 마음에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말라기서에 나오는 “23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24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말라 3, 23-24)는 말씀을 근거로  엘리야가 와서  열 두 지파를 재건할 것이라고 율법학자들은 믿고 있는데, 엘리야가 오지 않았으니 메시아도 아직 오지 않았고, 따라서 예수님은 메시아일 수 없다고 그들이 주장한다고  예수님께 전해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라키서의 예언을 받아들이시면서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덧붙여서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마태 17, 12)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구약성경의 예언대로 엘리야는 이미 왔고, 임무를 수행했지만'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라는 말은 사람들은 엘리야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박해하고 죽였다는 뜻입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라는 말은 메시아의 선구자인 엘리야가 박해를 받고 죽음을 당했으니 메시아이신 예수님도 당연히 박해를 받고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그를 제멋대로 다루었다, 즉 이말은 박해하고 죽였다는 의미인데 이 말씀을 듣고서 세례자 요한이 바로 엘리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한 일들이 바로 엘리야의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율법학자들은 성경에 기록된 엘리야가 다시 살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엘리야는 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나의 이웃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 하듯이 세레자 요한을 통해서 그 안에 현존하고 있는 엘리야를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열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으면 세례자 요한에게서는 세례자 요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으로부터는 나약한 인간 만이 보일 뿐입니다.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엘리야를 발견할 수 있을 때 바로 예수님으로부터 메시아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시선이 세상을 향하면 하느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이나 시선이 하늘을 향하면 하느님은 바로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이웃을 통해서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세상 만물을 통해서 하느님의 손길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와 우리 가족들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나를 고집하지 않으며  바로 그리스도 안에 머물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삶의 주인이 되면,  나의 마음의 완고 함은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의 기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처음처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거룩한 하루 되시도록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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