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론

희망의 시작 - 연중 제 10주간 미사 - 선 긋기 문화를 넘어서(마르 3, 20-35)

Author
kchung6767
Date
2018-06-09 13:32
Views
950

연중 제 10주간 미사

2018년 6월 10일 일요일

선 긋기 문화를 넘어서(마르 3, 20-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 35) 

우리는 선 긋기를 침으로 좋아합니다. 혈연, 지연, 학연, 등등으로 선긋기를 합니다. 이러한 선의 경계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 가에 따라서 사람을 바라 보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이러한 선 긋기가 정치의 계절이 되면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배타적인 선 긋기를 하느님 중심으로 바꾸어 놓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우리 모두는 한 형제요 자매입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과 논쟁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이 미쳤다고 하는 소문을 듣고서 당신을 잡기 위해서 찾아온 당신의 어머니와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예수님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십니다. 참으로 당황스럽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시는 예수님의 의도는 당신의 가족관계를 부정하시는 것같지는 않습니다. 좀 더 새로운 가르침을 주시기 위해서 당신 주위에 앉아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반문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봐서는 안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평화를 주러 온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왔다고 하십니다. 이러한 말씀들이 담고 있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당신께서는 어떠한 특정한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장소의 개념이 아니고 통치의 개념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어떤 장소가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장소라면 어느 곳이든 그곳에는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와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함께하고 계시는 이 땅에는 바로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와 있는 것입니다. 그런맥락에서 바라본다면 하느님 나라에서는 결혼하는 일도 없고 형제자매의 육적인 관계는 없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존재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 만이 하느님의 나라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로 당신의  주변에서 당신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는 이 사람들이 바로 당신의 어머니이고 형제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육적인 관계의 가족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죽음을 앞두고 요한에게 당신의 어머니를 부탁하시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단지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 인간적인 사랑에 우선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이 두 사랑은 대립적인 관계의 사랑이 아닌 차원이 다른 사랑일 뿐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자리에 자신이나 세상적인 것들을 두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걱정하는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것들이 필요함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먼저 하늘나라와 하느님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것들은 곁들여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실천이 혈연적이며 배타적인  혈연관계의 틀에 매여 있는 우리를 하느님 안에서의 열려진 가족의 개념에로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고자 합니다. 새로움에 대해서 새것이라는 의미로 그리스 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시간적 의미에서의 새로움은 네오스입니다. 시간이 가고 새로운 시간이 오는 것을 말합니다. 시간이 가면서 오는 새로운 시간의 의미로 네오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질적인 새로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은 카이노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카이노스의 인간관계를 말합니다. 혈연적인 배타적인 관계에서 하느님 안에서 열린 인간관계에로의 변화입니다. 

새로운 한 주간을 시작하면서  코린토 후서 5장 17절의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하는 말씀과 함께  하느님 안에서 우리 모두는 한 형제 자매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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