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마르 16,15-18) - 2443

Author
신부님
Date
2022-01-23 22:31
Views
916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443

2022년 1월 25일 화요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마르 16,15-18)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 16, 15 - 16)

오늘은 바오로 사도의 회심축일입니다.  성인을 주보 성인으로 모시고 살아가시는 모든 분들께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회심의 회심축일을 맞으면서 사도의 회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극과 극의 모습을 보입니다. 회심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심을 우리는 잘 압니다. 

우리 모두는 양과의 질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어느 면에서 회심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 바오로 사도의 변화를 통해서 우리 또한 이러한 변화의 희망을 자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는 삶”(코린 전 9, 22) 이 어떠한 삶의 참의미를 깨닫게 하십니다.  바오로 사도의 회심은 바로 이 삶의 출발이며  이 세상 끝까지 선교하는 선교사의 삶의 핵심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 회심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신앙에 입각하여 그리스도교의 박해에 열정을 쏟았고 회심한 후에는 그리스도교의 전교에 열정을 쏟았던 분이십니다. 이 분은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에 입각한 삶이었슴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분께서 뿌린 그 복음의 씨가 열매를 맺어서 우리가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인들께서 뿌리신 그 복음의 씨가 우리 자신의 삶을 통해서 열매 맺는 삶을 살고 있는지 반성해 보아야하겠습니다.

이 복음의 씨가 생명을 주는 씨임을 압니다. 하지만 현대세계는 죽음의 문화가 생명의 문화를 가장하여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선교는 이런 측면에서 생명의 문화가 죽음의 문화를 주도할 수 있게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나를 삼키기 위해서 나를 찾아 돌아다니는 사자를 생각해 봅니다. 사자는 배가 고프지 않으면 다른 동물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어느 자연 공원을 가보면 실제로 사자가 여러 동물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답니다. 그런데 이 동물들도 사자가 배고플 때가 되면 사자에게서 멀리 떠난답니다. 나름대로 그들만의 생존의 지혜를 갖고 살아갑니다. 이들이 사자의 배고픈 때를 잘못 판단해서 일어날 일은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사탄의 유혹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매 순간 순간을 깨어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이 선택의 순간에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사랑은 연습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생활화하기 위해서 연습이 필요합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선택의 기로에 서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은일인지 사탄의 말을 듣는 것이 옳은 일인지 판단해 보라고 합니다.

사랑의 열정과 욕망의 열정을 우리는 갖고 살아갑니다. 선택의 기로에 서면 이 두 열정이 서로 자기에게로 힘을 실어주도록 초대를 합니다. 아무래도 사랑의 열정보다는 욕망의 열정이 힘이 셉니다. 그래서 힘이 센 욕망의 열정을 사랑의 열정으로 제압하기 위해서 우리의 의지적인 노력이 꼭 필요합니다. 지속적인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의 열정으로 넘어가기 위한 노력부터 사랑의 연습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이러한 연습의 시작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변화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변합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교회를 어떻게 박해했는지 사도행전은 이렇게 알려줍니다.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사도행8:3).  그리고 바오로 자신도  “내가 한때 유다교에 있을 적에 나의 행실이 어떠하였는지 여러분은 이미 들었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며 아예 없애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유다교를 신봉하는 일에서도 동족인 내 또래의 많은 사람들보다 앞서 있었고,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도 훨씬 더 열심이었습니다.”(갈라 1, 13-14) 고 고백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기의 전 삶을 욕망의 열정으로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난 뒤에 바뀝니다.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살던 사람이 이제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사랑의 열정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 교회를 옹호하고 전파하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러한 큰 변화가 바로 베드로와 요한에게도 일어난 것입니다.

‘변화’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체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욕망의 열정’으로 살아온 사람이 ‘사랑의 열정’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를 능동적으로 실천하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강요되어서 변해야 합니다. 기쁨으로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억지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여러분은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십니다.”(베드 전 5, 5)하고 말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겸손의 옷을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에로스적인 열망을 갖고 살아가던 삶에서 아가페적인 열정을 갖고 살아가게 됩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베드로와 요한입니다.

이들은 원래 겁이 많고 배운 것도 없는 무식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강림 후에 이들에게 본질적인 변화가 생겼습니다. 떳떳하게 자신들의 부족함을 고백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아픈 사람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선포하는데 더 이상  두려움과 불안에 떠는 그러한 과거의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담대하게 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목격한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는 제자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십니다. 이들의 완고한 마음은 여전히 과거의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이들이 ‘새로움’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도록 초대합니다.

익숙한 것에서의 탈출이, 고정된 사고의 틀을 깨고 나오는 것이, 에로스적인 열망을 아가페적인 열망으로의 전환이 매 선택의 순간에 하느님을 선택할 수 있는 필수 조건이며 이것이 바로 세상 끝까지 모든 피조물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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