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청빈은 가난이 아닌 자유함이다 (요한복음 12, 44~50) - 3191

Author
신부님
Date
2024-04-22 11:47
Views
561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191

2024년 4월 24일 수요일

청빈은 가난이 아닌 자유함이다 (요한복음 12, 44~50)

“44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 45 그리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 ” (요한 12, 44- 45)

지난 사순시기에 부산의 분도 수녀원에서 일주일 정도 지냈었습니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기나간 저의 옛 시간들을 더듬어 볼 수가 있었습니다.

원래 수도생활 자체가 규칙에 얽매이는 삶인데 이 규칙이 우리의 자유함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참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수도자들이 하는 청빈, 순결, 순명의 서원이 일상안에서 하느님 안에서 참 자유함을 누리는 최고의 보호장치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보호장치들을 자신의 삶을 규제하는 규칙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때부터 자유함은 사라지고 이 서원이 바로 나의 주인이 되고 나는 그 주인이 종이 되고 말 것입니다.

청빈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일반적으로 가난을 의미하지만 이 청빈은 가난의 의미도 담고 있지만  청빈의 참의미는 자유함 입니다. 물적 영적인 무질서한 소유로부터의 자유함을 말합니다. 이 자유함은 바로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의 기초입니다.

창세기 15장을 보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방패' 가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그런데 그에게 이러한 약속을 하시는 이유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서 생명을 건 전쟁에 참여하고, 승리 후에는 소돔 왕이 제안하는  물질적인 보상의 약속을 과감하게 거절하는데, 이러한 아브라함의 행동이 하느님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방패가 되어주고 내가 너에게 큰 상을 주겠다' 고 약속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참으로 최고의 약속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눈에는 이 방패가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서 나의 방패가 되어 주시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하지만 이러한  약속에도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의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불안과 두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세상을 보면, 하느님이 보이지 않지만 하늘을 보면, 하느님이 보입니다. 하늘을 보는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사람은 당신을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고 당신을 보는 사람은 당신을 보내신 분을 보는 것’’ 이라고 큰 소리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큰 소리로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을 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삶을 통해 가르침과 행동으로 당신이 누구신지 누누히 설명을 하셨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유다인들에 대한 답답함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보내신 이가 누구이신지를 밝히십니다. 49절에서 “내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 친히 나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아버지는 하느님을 뜻하는 것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파견을 받은 자는 파견한 분으로부터 미션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명은  46절에서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어둠 속에서 머물지 않게 하시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둠이란 영적인 어둠입니다. 이 영적인 어둠은 믿음의 결여를 뜻하고 절망을 뜻하며 기쁨이 없음을 뜻하고 죽음을 뜻합니다. 우리의 방패가 되어주시는 하느님을 보지 못합니다.

반대로 빛은 지식을 의미하고 희망을 의미하며 기쁨을 의미하고 생명을 의미합니다. 하느님께서 나의 방패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사람들이 하느님과 그의 뜻과 그의 나라와 그의 의와 그의 구원의 진리를 알지 못해 절망 속에 빠져 있으며 참 기쁨을 알지 못하고 죽어가서는 안되겠기에, 하느님께서 그 사람들을 살리시기 위하여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그토록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3장 16절에서 그 사실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뒤에 그 결정적 중요성을 아버지께 기도하시는 중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도록 아들에게 모든 사람에 대한 권한을 주셨습니다.” (요한 17:3)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무지와 절망과 불행과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시고 영생을 누리게 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면 그 구원과 영생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우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를 보내신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아니, 여기서 안다는 것은 단지 지식을 갖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저 아는 것이 아니라 확신하는 것입니다.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 복음 3:16에서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믿음으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믿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방패가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와 우리 가족들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나의 방패가 되어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마음에 담고, 우리 모두가 우리의  이웃의 방패가 되는 거룩한 하루 지내시도록 기도합니다. 동시에 우리 모두가 청빈이 바로 참 자유함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일상에서 청빈의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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