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탕자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15,1-3.11ㄴ-32) - 3147

Author
신부님
Date
2024-02-29 18:23
Views
697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147

2024 년 3월 2일 토요일

탕자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15,1-3.11ㄴ-32)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루카 15, 20)

상식이 통하는 세상인 줄 알고 살고 있지만 상식이 상식이 아닌 경우가 많은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고유한 모습과 성격을 갖고 살고 있는 것처럼 상식인 줄 알았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상식이 아닌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자신의 생각의 틀 안에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자신의 생각의 틀 안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이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있슴을 용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에 상식은 더 이상 상식이 아닌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강자의 목소리가 상식이 되는 사회입니다. 목소리가 큰 사람의 소리가 상식이 되어 버립니다.  이러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들이 만들어 자기들의 성의 벽이 너무나 높고 단단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높고 단단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사랑으로 이 벽을 무너 뜨려야 합니다.

사랑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합니다.  사랑은 철옹성을 무너 뜨리는 힘이 있습니다.

오늘 이 철옹성이 무너지는 과정을 목격합니다.

오늘복음의 ‘탕자의 비유’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경우에는 둘째 아들의 회심에 관심을 둡니다. 그런데 아들의 돌아옴도 중요하지만 아들을 떠나보낸 아버지의 마음을 느껴 본다면 그렇게 쉽게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면서 자신의 길을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작은 아들이 아버지께 ‘아버지 저에게 주실 유산을 미리 주십시오.’ 하고 청합니다. 그냥 성경은 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이 말이 나오기까지 많은 사건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는 이 아이가 벌써 내가 죽기를 원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수도 있고 이 아이는 아버지인 나보다는 돈에 더 관심을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덧붙여서 이 아들은 아버지가 나누어 주는 자신의 몫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여기서 ‘모두’라는 말과 ‘먼 고장’이라는 말이 강하게 다가옵니다. 왜 복음서는 ‘모두’와 ‘먼’을 강조할까 하고 생각을 하다가 , 이 아들은 아버지와 완전한 결별을 원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야 하는 삶이 자신에게 얼마나 부담이 되었으면 이렇게 아버지의 시야에서 완전히 떠나고 아버지의 흔적을 남기지 않게 모든 것을 걷어서 떠났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듭니다.

우리가 하느님 종으로 살면 그 안에서 자유를 누리지만 하느님을 떠나면 그 떠난 이유의 종이 되어 살아야 함을 잊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죄를 지을 자유까지 보장해 주셨지만 죄는 우리를 자신의 노예가 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떠나는 아들은 세상의 노예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세상에는 존재가치는 없고 소유가치만 존재합니다.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은 사라지고 인간의 모습만 존재합니다. 세상에서의 자유란 타락을 말합니다. 이 자유를 만끽한 아들은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죽음을 목전에 두게 됩니다. 그가 살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임을 스스로 깨닫습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기를 결심하지만 머뭇거리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자신을 받을 줄 것인가? 용서해 주실까? 하는 질문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마음을 몰라도 너무나 몰랐습니다.

아버지는 그러한 아들의 닫혀진 마음과는 달리 그가 떠난 뒤에도 아들을 향하여 당신의 마음을 열어놓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돌아오기만 하면 받아줄 준비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당신이 강제로 돌아오게 하실수도 있지만 그에게 선택할 자유를 허락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버지의 큰 사랑의 절정은 아들을 인격적으로 대하시는 것입니다. 아들이 스스로 돌아오기를 애태우며 기다림은 사랑이고  그 사랑은 용서였습니다.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것으로 아들의 모든 잘못은 덮어졌고 자신의 모든 것이 회복 되었습니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닫혀진 마음으로 살아가면 아버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랑의 아버지는 없고 자신을 구속하는 아버지만 보입니다. 벌하고 야단치는 아버지만 보입니다.  마음을 열고 아버지를 바라보면 사랑과 용서의 아버지를 볼 수가 있습니다. 내가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아버지를 보게 됩니다.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회개하며 돌아오는 둘째 아들의 회개하며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저 모습이 나의 모습이 되었으면 합니다.  동시에 지금도 당신께로 돌아 오기를 두 손 모아 기다리고 계시는 아버지의 참 사랑을 이 땅에서 실천하는 저희들이 될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Total 2,632
Number Title Author Date Votes Views
2612
희망이 시작 - 죽는 것이 사는 것이다(루카 24, 35- 48) - 3174
신부님 | 2024.04.02 | Votes 5 | Views 580
신부님 2024.04.02 5 580
2611
희망의 시작 - 생명을 보는 눈과 생명 속에서도 죽음을 보는 눈(루카 24, 13-35) - 3173
신부님 | 2024.04.01 | Votes 5 | Views 672
신부님 2024.04.01 5 672
2610
희망의 시작 - 누구를 찾느냐? (요한 20, 11-18) - 3172
신부님 | 2024.03.31 | Votes 1 | Views 637
신부님 2024.03.31 1 637
2609
희망의 시작 - 사순에서 부활로의 삶의 길 (마태 28,8-15) - 3171
신부님 | 2024.03.30 | Votes 4 | Views 686
신부님 2024.03.30 4 686
2608
희망의 시작 - 주님 수난 성 금요일(요한 18, 1-19, 42) - 3170
신부님 | 2024.03.27 | Votes 4 | Views 653
신부님 2024.03.27 4 653
2607
희망의 시작 - 주님 만찬 성목요일(요한 13, 1-15) - 3169
신부님 | 2024.03.26 | Votes 3 | Views 800
신부님 2024.03.26 3 800
2606
희망의 시작 - 다시 한번 돌아 보는 나의 모습(마태 26, 14-25) - 3168
신부님 | 2024.03.25 | Votes 5 | Views 1039
신부님 2024.03.25 5 1039
2605
희망의 시작 - 헌신과 사랑의 본보기(요한 12, 1-11) - 3167
신부님 | 2024.03.24 | Votes 3 | Views 928
신부님 2024.03.24 3 928
2604
희망의 시작 - 유다와 마리아의 대조적인 삶의 모습(요한 12, 1-11) - 3166
신부님 | 2024.03.23 | Votes 4 | Views 776
신부님 2024.03.23 4 776
2603
희망의 시작 - 표징 앞에 선 우리의 자세(요한 11, 45-56) - 3165
신부님 | 2024.03.21 | Votes 3 | Views 958
신부님 2024.03.21 3 958

Enquire now

Give us a call or fill in the form below and we will contact you. We endeavor to answer all inquiries within 24 hours on business d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