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는 삶(마태오 21,33-43.45-46)- 1564

Author
kchung6767
Date
2019-03-21 03:02
Views
1564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564

2019년 3월 22일 금요일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는 삶(마태오 21,33-43.45-46)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마태 21, 42)

피정을 하거나 성경을 읽으면서 혹은 미사에 참여하면서 하느님의 큰 은혜를 체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로마서 8장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고 있슴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깊은 체험이 체험으로만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은총의 깊은 체험이 우리의 일상에서 구체화 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의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아파하고 그들을 위해서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갖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소유에 집착하다 보면, 소유하기 위한 두려움과 소유하고 있는 것을 빼앗기지는 않을 까에  대한 두려움이 함께하게 됩니다.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의 특징은 바로 는 ‘이러한 세상적인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집착과 소유의 삶에서 해방되는 삶을 살아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시기와 질투에서 해방되는 삶을 살라고 초대하십니다.  이 모든 초대에의 응답은 나 혼자 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압니다.  오로지 주님의 은총 안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오늘 예수님의 이 초대는 바로 당신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오늘 독서,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은 꿈을 꾸는 사람입니다. 그는 특별히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과도한 사랑이 형들이 요셉을 질투하게 만듭니다. 그 질투는 요셉을 죽이게 하는 마음을 먹게 합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이스마엘인들에게 은전 스무닢에 팔아버립니다.

형들이 요셉을 죽일려고 마음을 먹었다가 결국에는 상인들에게 팔아넘기는 과정들을 보면서 요셉을 편애한 야곱의 행동,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함없이 자신의 꿈을 천진난만하게 이야기하는 신중치 못한 요셉의 행동을, 그리고 형들의 요셉에 대한 악의에 찬 행동들을 보게 됩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에 떳떳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로마 8, 28) 말이 바로 여기에 해당함을 알게 됩니다. 

형들에게 버림을 받은 요셉이 바로 형들을 구하는 기막힌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크게는 이스라엘이 버린 요셉이 이스라엘을 구하게됩니다. 하느님의 신비인 것입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생각은 다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어린자식들의 생각과 부모들의 생각이 다른 것과 같은 이유일 수 있습니다. 생각이 깊은 사람과 생각이 없는 사람과의 생각도 다릅니다. 

신약에서의 요셉은 자신의 약혼녀의 임신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돌에맞아 죽게 되는 그러한 절대 절명의 순간에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 자신이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 세상에 드러나지 않게 마리아의 문제를 조용히 처리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자유를 남용한 아담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선악과를 따먹은 일을 하느님과 자신의 여자인 하와에게 전가를 합니다.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잘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이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죄는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말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잘 듣는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강의를 잘 듣는 것과 어머니 말씀을 잘 듣는 것과는 의미의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한 예로 우리는 ‘부자’들을 보고 저집은 ‘참 잘 사는 집’이라고 말하고 ‘가난한 집’을 보고서는 ‘못사는 집’이라고 말합니다. 엄청난 의미의 차이가 있슴에도 불구하고 의식없이 그렇게 써 왔던 것입니다. 말이 나의 생각을 지배하고 그 생각이 나의 삶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이 목적이 되는 삶과 내가 목적이 되는 삶의 혼용입니다. 아담과 이브의 죄는 바로 하느님이 주인이 되는 삶을 자신이 주인이 되는 삶을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여태가지는 하느님이 나의 삶의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자신이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됩니다. 이런 엄청난 죄악의 삶을 우리는 당연한 것처럼 의식없이 그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포도밭 주인이 소작인들에게 자신의 포도밭을 맡기고 멀리 떠납니다.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을 맡기시는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최초의 인간이 죄를 짓는 이유는 자신이 하느님이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소작인들이 주인이 자신의 몫을 받기 위해서 보낸 종을 죽인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들이 빌려서 쓰고 있는 땅의 주인이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이러한 유혹은 지금의 사회가 갖고 있는 모든 문제의 뿌리입니다. 

인간에게는 값없게 보이는 일이 하느님께는 귀한 일이기도 하고 그 반대의 일이 되기도 합니다.  바로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마태 21, 42)”라는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눈과 마음과 생각을 입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랑하면 상대방의 말을 잘 듣습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상대를 닮아갑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면 그분의 말씀을 잘 듣고 생각과 마음과 눈을 닮아갈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으며 그 말씀을 실천하는 삶, 하느님의 크신 사랑이 내 안에서 은총으로 나만의 은총으로만 머무는 삶이 아니라 나의 일상을 통해서 삶으로 드러나는 거룩한 하루를  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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