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마르 6, 17-29/ 마태14, 3-12) - 1078

Author
kchung6767
Date
2017-08-28 14:55
Views
1606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078

2017년 8월 29일 화요일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마르 6, 17-29/ 마태14, 3-12)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 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마르 6, 18-19)

무엇보다도 오늘 축일을 맞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로서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했던 세례자 요한의 삶을 되돌아 보는 시간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처한 입장이나 처지에서 만족하면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상대적인 비교의 행복에 익숙해 있기 때문입니다.  더 많이 소유하면 할수록 행복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를 들여다 보면, 비교 우위에 의한 행복은 순간의 행복입니다.  더 나은 것이, 더 큰 것이  나타나면 사라지는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 행복은 소유에서가 아니라 나눔에서 온다고 말합니다.  소유의 행복과 비움의 행복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하루입니다. 소유는 자신이 중심이 되는 것이고 나눔은 하느님께서 주인이 되시는 삶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 행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께서 주시는 참 행복은 인간의 욕정의 충족이나 세상적인 목적의 성취에서 갖는 행복, 즉  자신이 주인이되는 상대적인 비교 우위에 의한 행복이 아니라 비움과 나눔의 삶에서 얻는 행복인 것입니다. 하느님이 주인이 되시는 삶에서 갖게 되는 행복인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바로 이천년 전에 희브리서에서 “돈 욕심에 얽매여 살지 말고 지금 가진 것으로 만족하십시오. 그분께서 “나는 결코 너를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겠다.”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6 그러므로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도와주는 분이시니,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희브 13, 5-6) 하고 말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세 인물을 보게 됩니다. 헤로데와 그의 부인인 헤로디아 그리고 딸 살로메를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서에서는 헤로데가 세례자 요한을 죽인 이유를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당시에  세례자 요한의 인기가 백성들 사이에서 높아지자 헤로데는 이러한 인기가 반란이나 폭동으로 이어질까 두려워해서 요한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복음서에는 요한이 헤로데의 결혼문제를 비판하다가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당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내용이었습니다.  

어쨌던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의 이러한 행위의 부당함을 여러차레 지적하였기 때문에 헤로데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슴은 당연했을 것입니다. 동시에 이러한 세례자 요한의 행위에 대해서 당사자인 헤로디아는 앙심을 품고 여러차례 세례자 요한을 죽일려고 시도를 했다고 합니다. 마침내 이들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옵니다. 

헤로데는 자신의 생일 날에 지역의 유지들과 고위관리들을 초대하여 축하파티를 엽니다. 이 축하 파티 장소에서 아버지의 생일을 축하하며 딸 살로메는 춤을 춥니다. 당시에 남자들의 술자리에서 춤을 추는 것은 창녀들이나 하던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주가 그런 자리에서 춤을 추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고, 전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춤은 매우 음란한 춤이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당시 살로메의 나이는 14-15세 정도 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헤로데는 공주의 춤에 빠져서 무슨 소원이든지 들어주겠다고 큰 소리를 칩니다. 자신의 권한 밖에 있는 것까지도 들어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런데 살로메는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갖다 달라고 청합니다. 당시에 왕의 잔치 때에는 어떤 부탁도 거절하지 않는다는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살로메기 이러한 춤을 출 수 있었고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갖다 달라고 하는 청은 자신의 어머니인 헤로디아와의 사전 교감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세 사람이 협력하여 자신들의 부당함을 덮기 위하여 무고한 세례자 요한을 죽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보면서 죄를 짓고 난 뒤에 서로가 서로에게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아담과 하와의 모습과 아벨을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자인 카인의 모습 그리고 다윗의 모습이 함께 지나갑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권위에 도전 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로 에덴 동산 안에 있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명령 하시지만 이들은 사탄의 유혹에 빠져 결국에는 선악과를 따먹습니다. 그 결과는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옵니다. 이 죄의 결과로 인해서  부끄러움을 알게하고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 죄를 원죄라고 합니다. 죽음이 세상에 들어옵니다.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서 자신이 탐 했던 여인의 남편을 죽게 만듭니다. 그 이후에 참으로 처절하게 회개하는 다윗의 모습을 시편 51편을 통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봅니다. 당시의 사람들의 생각과는 너무나 다른 삶의 논리로 살아가는 예수님을 그들은 메시아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부당성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합니다. 지금까지도 예수님을 죽게했던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서 반성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의 지금의 처지에서 만족할 줄 아는 삶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삶의 힘은 예수님을 바라봄을 통해서 갖게 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사목자의 위기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가지 못하고 신앙의 위기를 갖게 되는 이유는 결국,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참 행복을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오늘 하루도 예수님을 바라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나의 삶의 주인이신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하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다시 한번 오늘 축일을 맞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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