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성 폴리카르포 주교 순교자 기념일 (마르 9, 38-40) - 2468

Author
신부님
Date
2022-02-21 21:57
Views
1092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468

2022년 2월 23일 수요일

성 폴리카르포 주교 순교자 기념일 (마르 9, 38-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마르 9, 40)

오늘은 성 폴리카르포 주교 순교자 기념일 입니다.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최근에 정치권에서 유행하는 단어중의 하나가 ‘갈라치기’ 한다는 말입니다. 내편 네편으로 나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분열을 조장해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이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잘 알면서도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이 말을 일상에서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판단할 때 이분법적인 논리로 판단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폐쇄적인 눈과 사고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열려진 생각과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함을 깨우져 주십니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흑과 백만 있는 것이 아닐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와의 생각이 다르면 우리의 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도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었나 봅니다.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하지도 않고 또한 공동체에 속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소문만 듣고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일이 있었슴을 오늘 복음은 알려줍니다.

요한이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은 그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고  교회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었슴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다혈질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던 요한은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일은 예수님이나 예수님을 따르던 사도들 만의  고유한 권한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동체에 속하지도 예수님을 믿지도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서 그들이 그런일을 하지 못하도록 요한이 막았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요한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 에수님께 자신의 일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일은 예수님이나 사도 들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공동체 속하지도 않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도 않는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냈다는 것은 예수님의 권위에 의지해서 마귀를 쫓아냈다 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만약에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낼 수 있었다면 쫓겨난 마귀는 그 사람들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두려워하고 예수님께 순명한 것임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비록 그 사람이 겉으로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행위 속에 담겨진 뜻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사람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예수님의 권위와 힘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그가 사도들과 같은 신앙은 없더라도 예수님을 통해 행사되는 하느님의 능력은 믿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킨다면, 즉 마귀가 쫓겨나는 것을 보게 된다면 그의 믿음은 더욱 커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 그가 신앙을 갖거나 공동체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적어도 예수님을 나쁘게 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라는 말씀은 분명하게 당신을 적이라고 선언하지 않는 모든  모든 사람은 동조자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가르침은 예수님께서는 열려진 사고를 갖고 계심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예수님의 이러한 열린 생각을 갖고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갖고서 사람들을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복음의 마지막 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우리' 라는 말을 사용하십니다. 당신과 당신의 제자들을 구분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 당신의 생각이 당연히 우리의 생각이어야 함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인 공동체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개방된 사고가 우리의 사고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단죄하기 전에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이유을 살펴보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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