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청개구리 본능 (마태 11,16-19) - 2406

Author
신부님
Date
2021-12-09 00:24
Views
1117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406

2021년 12월 10일 금요일

청개구리 본능 (마태 11,16-19)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17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마태 11, 16-17))

제가 유투버를 좋아하는 이유는 지식의 보고이기 때문입니다. 철학교수님들과 신부님들의 강의를 자주 봅니다.  이 분들의 강의를 보면서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웁니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혜택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에 많은 감사를 드립니다. 급속한 과학문명의 발달의 혜택을 누리며 살면 살수록 하느님의 존재는  우리에게서 더욱 왜소해 짐을 느낍니다. 하느님이 계시기에 있을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능력에 머무는 우리의 시선이기에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의심이 더욱 강해지나 봅니다.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안타까워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요한의 설교를 듣고서 회개를 하여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의로우심’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굳어서 일반 민중들과는 달리 바리사이들과 율법교사들은 요한으로부터 세례도 받지 않고 자신들을  위한 하느님의 구원계획인 하느님의 뜻을 물리칩니다. 

이들을 바라보시는 예수님께서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러니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하시는 말씀은 이들에 대한 극도의 안타까움의 표현으로 느껴집니다.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참으로 예수님의 이러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완고한 고집을 신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옳음을 옳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정해 놓은 그러한 사고의 틀을 부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나는 이러한 고집을 나의 소신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하며 자신을 돌아봅니다.

이러한 사람들, 즉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비롯해서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을 배척하고 비웃는 사람들을 두고 예수님께서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 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루카 7, 32)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이들은 장터에서 이 놀이를 할까 저 놀이를 할까, 하며 서로 다투고 있는 아이들입니다. 피리를 불고 춤을 추는 것은  결혼식을 흉내내는 놀이이고 곡을 하고 우는 것은 장례식을 흉내내고 있는 놀이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의 의미는 금욕주의자인 요한에게는 춤을 추라고 요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수님께는 곡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청개구리와 같은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러한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희브리서 12장 2절의 “우리 믿음의 영도자 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 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 쪽에 앉으셨습니다.” 하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신앙의 원천 이시고 이유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구원 하신다는 뜻과 하느님의 오른 쪽에 앉으신다는 그 기쁨으로 세상이 주는 가장 모욕적인 형벌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수치를 수치로 받으시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서 당하는 부끄러움은 부끄러움이 아닌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실천하기 위해서 살다가 내가 당하는 수치는 수치가 아닌 것입니다. 믿음은 용기를 갖게 합니다. 이 믿음은 세상적인 기준을 넘어서게 합니다. 오로지 하느님 만을 보고 살아가게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수 많은 은사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사랑 만은 영원히 남아서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 만이 모든 은사의 존재의 이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모든 답은 그곳에 있습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최첨단의 과학기술들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볼 수 있는 믿음을 간직할 수 있고  주님 안에서 옳음을 보고 옳다고 할 수 있고 그름을 보고 그르다고 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간직하며 살 수 있는 은총을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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