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예수님의 크신 사랑이 주는 감동(요한 21, 15-19) - 1003

Author
kchung6767
Date
2017-06-01 10:03
Views
1952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003

2017년 6월 2일 금요일

예수님의 크신 사랑이 주는 감동(요한 21, 15-19)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요한 21, 15)

오늘 복음은 착한 목자와 양의 관계에 대해서 묵상하게 합니다.  양과 목자 사이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이 사랑은 서로가 서로에게 가치를 부여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 있고 가치가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목적지향적인 사랑의 차이입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세상적인 사랑의 차이입니다. 양들을 잘 돌본다는 것은 바로 사랑하기 때문에 가치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본당이나 신심 단체에서 봉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봉사와 섬김에 예수님이 존재하는 지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없는 봉사는 자신의 업적이나 자신을 드러 냄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참된 봉사나 희생이 사랑이 전제 되어야 함에도 그 사랑의 자리에 자신의 드러냄이나 과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당신에 대한 사랑을 세 번씩이나 확인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사랑을 확인하시는 가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한편으로는 베드로가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배신 하였기에 이러한 확인을 통해서 베드로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부담을 덜어 주시고 자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랑의 확인 다음에는 꼭 ‘당신의 양들을 잘 돌보라.’는 말씀을 덧붙이시는 것입니다.

에수님을 사랑하는 것과 당신의 양들을 잘 돌보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슴을 보여줍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양들을 사랑하라는 의미로 들리기도 합니다.  양들을 잘 돌보는 전제는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상에서의 죽음은 제자들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러한 충격은 이들이 에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포기하고 원래의 자신들의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세속에서 거룩함으로 나아갔다가 다시 세속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들을 찾아 가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다시 ‘거룩함’을 회복합니다. 그 내용이 요한복음 21장에서 예수님과 베드로와의 만남에서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향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로서의 살을 살아가고 있는 제자들에 나타나셔서 당신이 참으로 부활하신 예수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그들을 위해서 아침을 준비해 주십니다. 그들과 함께 아침을 드시고 난 후에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당시 근동지방에서는 중요한 책임이나 의무를 맡길 때 증인들 앞에서 세 번 반복하던 것에 따라서 베드로에게 같은 질문을 세 번 반복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본문 15절).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 다시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본문 16절).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 또 다시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는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실 때 ‘아가페오’라는 단어를 씁니다. ‘아가페로 즉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느냐’는 뜻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지난날 자신의 잘못을 잘 알기에  무조건적인 투신의 의미가 담긴 아가페적인 사랑의 말을 감히 사용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필레오, 즉 형제애적인 우정의 의미가 담긴 필레오라는 동사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마음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의 질문에서는 아가페가 아닌 필레오라는 동사를 사용하십니다. 비록 사랑에 인간적인 한계가 있겠지만 그러한 인간적인 한계를 인정하시면서 당신의 양들을 잘 돌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이면에는 부족한 부분은 당신께서 채우시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묵시적인 다짐은 바로 성령강림으로 이루어집니다.

덧붙여서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하시는  말씀은 베드로에게 주님의 신뢰가 확고하며 이러한 신뢰위에서 사명을 부여하시는 것으로 보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라” 하고 제자들을 초대하십니다. 이 초대의 말씀에는 제자들이 예전에 갖고 있었던 좌절과 실망 그리고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참 사랑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나의 양을 잘 돌보는 삶을 살고자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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