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새롭게 거듭나게 하는 믿음(요한 4, 43-54) - 1572

Author
kchung6767
Date
2019-03-31 03:19
Views
991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572

2019년 4월 1일 월요일

새롭게 거듭나게 하는 믿음(요한 4, 43-54).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요한 4, 50).

 우리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과거를 넘어서 미래를 보고  그 미래 안에서 하느님의 창조의 기쁨을 체험하고 살아가고 부정의 어둠에서 긍정의 밝음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죽음에서 생명을 보게 하고 옛 인간을 새 인간으로 만듭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과의 차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다름을 깨닫습니다.

믿음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열매는 생명입니다. 죄의 싹은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구원은 하느님과의 관계의 회복이고 죄는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감은 바로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왕실 관리의 믿음에 관한 말씀입니다. 자신의 아들이 가파르나움에서 아파 누워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유다를 떠나서 갈릴래아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서 예수님을 찾아와서 죽게 된 자신의 아들을 살려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는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는 그 말씀을 믿고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에 자신의 아들이 살아났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의 믿음이 바로 죽게 된 아이를 살립니다.

 ‘새롭다’는 것에 생각해 봅니다. 똑 같은 세상이고 물건인데 새롭게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을 바라보는 내가 변한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이 바뀐 것입니다. 욕심이 가득 차 있던 사람이 욕심을 버렸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나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여유가 있습니다. 주관적인 판단에서 이제는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경쟁의 대상으로 다가왔었던 이웃이 이제는 동반자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의 아팠던 기억들이 사라집니다. 불평과 불만이 가득했던 마음 속에 평화와 감사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변화입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이제는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고 살아갑니다.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불행한 이유는 바로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른댜는 데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자신에게 ‘내가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에 대해서 질문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를 세상적인 것에서 찾는가 아니면 하느님 안에서 찾느냐에 따라서 삶의 자세가 달라질 것입니다.

 하느님은 믿고 싶은데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하느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삶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하느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자체가 하느님으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바로 자신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조건없이 나를 사랑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하느님을 봅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부모님의 사랑을 보면서도 하느님에게로 나아가지를 못합니다. 무엇인가가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것을 막고 있는 내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면  언제나 존재해 왔던 세상이 나에게 새롭게 다가옵니다. 마찬가지로 하늘도 나에게 새롭게 다가옵니다. 그 순간 새 하늘과 새 땅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 삶의 이유를 과거에서 찾는 사람은 현재의 삶의 이유를 모릅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의 이유를 미래에서 찾는 사람은 그 이유를 압니다. 과거에는 인간이 있지만 미래에는 하느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이 나의 존재의 이유가 되는 그 순간 새 하늘과 새 땅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표징도 이적도 필요가 없습니다. 표징이나 이적때문에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기 때문에 표징이나 이적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 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이사 65, 17)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꼼꼼히 생각해 봅니다. 새롭다는 의미는 과거를 기억하지도 마음에 떠오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새로움의 완성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시는 것을 대대로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것(이사 65, 18)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왕실 관리의 믿음을 봅니다. 이 사람의 믿음을 통해서 나의 믿음을 점검해 봅니다. 믿음은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에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래서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 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이사 65, 27) 는 말씀을 가슴에 담고 믿음으로 현재의 삶의 현장에서 새 하늘과 새 창을 체험하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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