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마태 11, 11-15) - 1485

Author
kchung6767
Date
2018-12-12 13:39
Views
1035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485

2018년 12월 113일 목요일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마태 11, 11-15)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마태 11, 12)

오늘은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을입니다.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영어 속담에 “젊은이여! 야망을 가져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큰 꿈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우리는 “꿈은 이루어진다.” 하고  말합니다. 듣기에는 좋은 말이고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굉장히 위험한 말이기도 합니다. 헛된꿈을 갖는 것, 꿈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 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세례자 요한은 우리에게 어떠한 그러한 삶을 살았던 우리의 멘토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저에게 ‘하늘나라가 폭행을 당하고 있는데 너도 이 폭행에 협조가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라.’ 고 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분으로 오셨다고 합니다. 요한은 그 준비로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바로 오시는 예수님을 맞기 위한 우리의 준비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이 땅에 하늘나라가 이미 와 있슴을 의미합니다. 이 하늘나라는 하느님께서 지배하시는 나라입니다. 

완성으로 나아가는 이 하늘나라는 과정에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상황을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마태 11, 12)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늘나라에 대한 폭력은 그 당시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님을 잘 압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는 부정과 불의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모든 이기적인 행위들, 등등 부정적인 요소들이 이러한 폭력들의 모습일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폭력은 외부에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 자신 안에도 존재합니다. 

밝음 속에서도 어둠은 존재합니다. 어떤 사람이 밤과 어둠을 구별하는 방법을 자신의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질문을 받는다면 당연히 밝음과 어둠을 빛의 존재 여부를 갖고서 답을 했을 것입니다. 볼 수 있슴과 볼 수 없음으로 답을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스승은 마음의 상태로 답을 합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나의 친구와 형제 자매로 보이면 낮이고 원수로 보이면 밤이랍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긍정적이면 밤이고 부정적이면 밤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낮을 살아가야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낮을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한 인물이 있습니다. 어떻게 밤에도 낮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세례자 요한입니다. 

바로 회개입니다. 겸손입니다. 회개와 겸손은 떨어져 가는 말이 아닌 하나의 말입니다.  겸손이 없으면 회개는 없기 때문입니다.  

폭력은  교만함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폭력적인 요소들로 가득찬 나의 마음을 비폭력과 사랑의 마음으로 바꾸어 가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폭력이 지배하는 세상이 어둠의 세상이라면 비 폭력이 지배하는 세상은 밝음의 세상일 것입니다. 겸손은 어둠을 항상 밝게 만들어 주는 마법의 약과 같습니다. 이 겸손이 바로 어둠을 밝음으로 우리를 나아가게 해 줍니다.

세례자 요한은 준비하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바친 분이십니다. 주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누구를 위한 삶’을 살아 간다는 것이  쉬운 삶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압니다. ‘주연이 아닌 조연의 삶’을 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누구나 다 주연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능력이 있고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세레자 요한은 자신이 주연으로 살아가도 누구도 당연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당시에 존경과 사랑을 받던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이유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에 야망의 노예가 되지 않고 사명에 충실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삶으로 하늘나라를 증거했던 사람입니다. “네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더욱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 집회서 3:18)는 말씀을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겸손을 바라보면서 오늘 하루를 낮으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유혹에 빠지는 나를 그분의 품에 내려놓습니다. 성모님을 바라보면서 성모님의 사랑과 순명의 삶을 배웁니다.

새로운 하루를 열린 마음으로 시작하고자 합니다.  열린 마음은 내가 보지 못했던 것도 보게하는 마법의 힘을 갖고 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닫힌 마음은 우리 주변에 우리에게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분들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항상 어둠 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게 합니다.  그래서 어둠이 지배하는 세상인줄 알았는데  열린 마음으로,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니 마음 속에 있는 어둠은 가고 빛으로 채워짐을 느낍니다. 사랑을 가득 마음에 담고 시작할 수 있는 하루입니다. 다시한번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축하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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