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론

희망의 시작 - 연중제 22주간 -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삶(마태 16, 21-27)

Author
신부님
Date
2023-09-01 22:26
Views
694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연중 제 22주

2023년 9월 3일 일요일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삶(마태 16, 21-27)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6, 24-25)

곱사등 모습의 글자 亞를 心 (마음심)이 받치고 있는 글자가 惡(악)입니다. 중국고사에서는 마음이 흉한 거악인(巨惡人)을 도천악인(滔天惡人) 이라 했습니다. 악을 하늘까지 이르게한 악인은 하늘이 천벌을 내린다는 뜻입니다.

생뚱맞게 이 고사성어를 인용하는 이유는 우리 주변에 국민을 도구삼아 자신이나 진영의 잘못을 감추려고 하거나 이익을 추구하는 많은 정치인들에게 너무나 합당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저를 포함한 우리 사제들 역시 이러한 도천악인 중의  한 사람일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에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당신을 따르기 위해서 나를 부인해야 한답니다. 그리고 이어서 나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버린다는 것은 자신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당신 자신을 십자가 상에서 대속의 제물로 내어 놓으셨듯이  우리 역시 우리의 이웃을 위해서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모든 것은 사랑하는 대상위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위주의 삶에서 사랑하는 사람 위주의 삶으로, 내가 주인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나 자신을 버리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십자가로 생각한다면 그 십자가는 지기 쉬운 십자가입니다. 똑같은 십자가이고 똑같이 버리는 것인데 어떤 경우에는 쉽게 받아들여지고 한 걸음 나아가 즐겁게 하는 것인데 또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힘들고 어렵게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기도는 두려움과 불안의 긴장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십자가를 사랑의 십자가로 받아 들이게 합니다. 자신을 버려야 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합니다. 나 혼자 지는 십자가도 아니고 나 혼자서 나를 버리는 것이 아닌 주님과 함께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말씀 나눔의 글이 여러분들께 읽혀지고 있다는 사실,  더욱 저를 모르시는 많은 분들도 읽고 계시다는 사실이 감사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사랑의 가족입니다.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기에 저의 부족함을 나누어도 사랑으로 감싸주심을 깨닫습니다.

저에게 나를 버리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묵상하면서 십자가가 두려움과 고통이 아닌 사랑과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당신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에게 십자가는 피할 수 없는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히 해야하는 일을 피하려고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분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 분별은 ‘듣는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하느님께 청했던 것은 바로 이 ‘듣는 마음’ 이었습니다. 그가 이 듣는 마음을 청한 이유는 말씀을 들음으로써 하느님의 지혜를 찾았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 ‘말씀을 듣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 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10장 39절의 말씀의 반복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은 달리 표현하면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면 영적인 자아가 죽고 영적인 자아를 추구하면 세상적인 자아가 죽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영적인 자아를 추구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인데 이 영적인 자아를 추구하기 위해서 세상적인 자아를 버리는 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삶인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이 세상보다도 귀하고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내가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나의 목숨을 잃어버린다면 무슨 삶의 의미가 있겠습니까? 참 진리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영원을 살기 위해서 세상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적인 것의 포기가 모든 것의 포기가 아닌 필요한 만큼 소유하고  나머지는 나누는 지혜인 것입니다.

소유와 포기는 떨어진 단어가 아닌 함께 가는 단어입니다. 소유와 비움의 천상적인 배합이 바로 참 평화와 행복의 길이며 영원을 사는 길임을 깨닫습니다. 세상보다도 귀한 우리의 생명을 세상 때문에 포기하는 어리석음으로 살지 않도록 오늘도 주님의 지혜를 청합니다.

사랑 때문에 나를 버리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 두렵지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이기에 더욱 두렵지가 않습니다. 함께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오늘 당신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삶’을 당당하게 실천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상급을 준비하고 계시는 하느님 아버지, 우리 마음에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시어, 언제나 어디서나 당신 만을 사랑함으로써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당신의 상급을 받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로를 통하여 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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