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론

희망의 시작 - 부활 제 2주일 (요한 20, 19-31)

Author
신부님
Date
2024-04-05 16:34
Views
446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2024년 4월 7일 일요일

부활 제 2주일 (요한 20, 19-31)

“30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31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0-31)

그리스도인이란 하느님의 말씀 속에서 정답을 찾기 위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삶으로는 ‘실천하는 사람들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믿음이란 관념이 아니라 의지적 실천이요, 실천적 의지인 것입니다.

보통 오늘 복음 말씀을 갖고서 강론을 하다 보면  다락 방에서 두려워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과 그자리에 없었던 토마스에 관한 이야기들을 주제로 강론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20장의 제일 마지막 부분을 갖고서 묵상을 해 보고자 합니다.

요한 복음서를 쓴 사도 요한은 오늘 복음 20장 30절부터 31절에서 요한복음을 쓴 목적을 두 가지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목적은 본문 31절 상반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게 하려는 것”이 요한복음 기록의 첫 번째 목적이었습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두 번째 목적은 31절 하반절에 다음과 같이 밝혀져 있습니다. “여러분이 믿고,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첫 번째의 목적, 믿게 하려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가 쉽게 되는데  두 번찌의 목적인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 리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 질문을 안할 수가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말의 의미 속에서는 ,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은 살아 있는 것 같으나 실은 다 죽은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생명은 ‘영원한 생명’을 의미 합니다. 유한한 생명을 살고 있는 우리는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는 사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이 유한이 영원에 붙어있지 않으면 생명이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참 생명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마치 생명인 대지로부터 뿌리째 뽑힌 나무와 같습니다. 뿌리 뽑힌 나무가 당장은 살아 있는 것 같으나, 그것은 생명의 고갈일 뿐 참 생명이 아니기에 결국은 말라죽어 버리고 맙니다. 영원과 단절된 모든 생명 역시 이와 같아서 죽음 이상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한이 요한복음을 쓴 궁극적인 목적은, 결코 시체 이상일 수 없는 불쌍한 인간들로 하여금 죽음을 초월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요한복음은 문자 그대로 ‘복된 소식’(福音), ‘Good News’일 수밖에 없습니다. 뿌리 뽑힌 나무처럼 생명이 고갈되어 가는 인간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보증해 주는 것보다 더 복된 소식은 있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그렇다면 산 것 같으나 실은 죽은 자에 불과한 인간들이 이 땅에서부터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를 의미합니까? 본문 31

절을 다시 살펴봅시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고 그분의 이름으로  참 생명,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내 중심에 모셔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또 무엇을 뜻합니까? 주님의 이름으로의  의미는 내가 주님 안에 머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사도 요한이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을 잘 이해함으로써 다시금 복음서를 대할 때 어떠한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그리고 복음서에 기록된 말씀 하나 하나에 담긴 의미들을 생각으로만 이해하고 그곳에 머무는 것이 일상에서 실천해야 하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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