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성체성혈 대 축일에 - 가치를 부여하는 사랑(루카 9,11ㄴ-17)

Author
kchung6767
Date
2019-06-21 15:41
Views
428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미사

2019년 6월 23일 일요일

성체성혈 대 축일에 - 가치를 부여하는 사랑( 루카 9,11ㄴ-17)

“16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그것들을 축복하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군중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17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주님 오늘 하루도 이렇게 당신 안에서 당신 보시기에 합당 삶을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하루입니다.  하루를 되돌아 보면서 한 순간도 헛되이 살지 않을려고 노력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또 새로운 한주간을 시작합니다. 당신의 날을 맞으면서 이 날을 부끄럽지 않게 맞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지 모릅니다.  당신께 드리는 이 모든 시간과 저의 시간과 지성들이 당신 보시기에 아름다운 제물이 되기를 청합니다.  또한 저의 부족함으로 당신 보시기에 합당하지 못한 제물이 있다면 당신의 사랑으로 받아 주십시오. 

에로스와 아가페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에로스는 가치를 추구하는 사랑이지만 아가페는 가치를 부여하는 사랑입니다.  가치를 추구하는 주체는 나이지만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대상이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성체성사의 핵심은 바로 가치를 부여하는 데에 있슴을 봅니다. 이러한 두 사랑의 종류 앞에서  이런 말을 생각합니다. 

죄는 묵상의 대상이 아니라 결단의 대상이라는 사실입니다. 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한 행위도 묵상의 대상이 아니라 결단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단을 해야 하는 순간에 머뭇거립니다. 이 머뭇 거림의 순간에 사탄은 우리를 유혹합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입니다. 이 날은 예수님께서 세우신 성체 성사의 신비를 기념하고 그 신비를 되새기는 날입니다. 성체성사의 신비는 단순히 빵과 포도주 안에 살아 계신 그분의 실체적 신비 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내어 주신 그분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의 삶을 우리의 일상에서 실천해 나가도록 다짐하는 날인 것입니다. 묵상하는 날이 아니라 결단하는 날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성체성사에 왜 참여해야 하는 가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바로  ‘영원한 삶에의 참여’ 입니다. 한계적인 생명에서 영원한 생명에로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 제사의 제물은 ‘자신’ 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제정된 성사의 완성은 이 성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제물로 봉헌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기적에는 우리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로 다가가야 합니다. 그 ‘다가감’이란 바로 사랑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고 하느님 때문에 내 자신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말로서 먹고 사는 많은 사람들을 봅니다. 선거 철이 되면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나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진정성이 없는 공허한 말들을 쏟아냅니다.  이들은  수없이 언론이나 공공장소에 등장해서 상대의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자신 만이 정의의 수호자이며 국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오천명을 먹이기 위해서 자신의 것을 내어 놓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이 먹기 위해서 오천명이 먹을 것을 가로채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고백의 언어보다는 고발의 언어들을 사용합니다. 이러한 말들을 통해서 그들의 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질문합니다. ‘저 사람들이 저렇게 열을 올리면서 원칙과 정의를 말하는데 저사람들에게 사랑은 있는 것인가?’ 왜 저 사람들은 ‘고백의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고 고발의 언어만 사용할까하는 생각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런데 ‘저 사람들’하고 말할 때 그 사람들 속에 ‘저’ 또한 슬프게도 그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이나 표징들을 보고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아십니다. 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먹을 것임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이렇게 많은 사람을 먹일려고 하면 엄청난 양의 빵이 필요한데  지금 저희들이 갖고 있는 것은 보리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능성’을 질문하시지만 사람들은 ‘불가능함’을 말합니다. 사물이나 사건을 두고서 접근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이 때 제자들이 자신들이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갖고 있는데  그것들로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가 있겠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장정만도 오천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데는 조건이 있습니다. 즉 인간의 최소한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보리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는 장정만도 오천명이 넘는 사람을 먹이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이라도 있는 것에 감사를 드리십니다. 우리는 불평을 할 때 그분은 감사를 드리십니다. 이것이 차이입니다 

인간이 ‘불가능’을 말할 때 예수님께서는 ‘가능’을 말씀하시고 인간이 ‘불평’을 말할 때 예수님께서는 ‘감사’를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불가능에서도 가능을 찾지만 사랑이 없으면 가능한 것 안에서도 불가능한 것을 찾습니다. 감사는 부족한 것에서도 충만함을 찾지만 불평과 불만은 충만함 속에서도 부족함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은 기적의 출발점입니다. 기적은 ‘가능성을 믿는 것에서, 최소한의 것에도 감사를 하는 것’에서  이루어짐을 깨닫게 됩니다. 

배를 굶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왜 이들이 배고파야 하는가의 원인과 이유를 따지기 이전에 먼저 이들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은 지금 이 순간에 필요한 것을 볼 수 있게 합니다. 이들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을 헤아리는 마음 즉 사랑이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성체성혈 대축일을 맞으면서  ‘나에게는 참 사랑이 있는가?’하는 질문을 해 봅니다. 그리고 참 사랑을 실천하는 새로운 한 주간을 살고자 다짐합니다. 가치를 추구하는 사랑이 아닌 가치를 부여하는 사랑을 실천하는 한 주간이 되기를 다짐합니다. 머뭇거리는 한 주간이 아니라 결단하고 실천하는 한 주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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