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루카 8, 1-3) - 2693

Author
신부님
Date
2022-09-14 23:13
Views
1113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693

2022년 9월 16일 금요일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루카 8, 1-3)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다.”(루카 8, 1)

오늘은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입니다. 먼저 위의 두분을 주보 성인으로 모시고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의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곳 저곳을 다니시면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목여정에 열 두 제자 뿐만 아니라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된 몇몇 여자도 함께하고 있었다고 복음서는 전합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닌 이면에는 바로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들이 체험한 하느님의 나라는 세상적인 어떤 것과도 바꿀 수가 없는 나라였을 것입니다. 도대체 이러한 나라는 어떠한 나라이겠습니까? 이 하느님의 나라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 나라는 공간의 개념이 아닌 통치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나라입니다.

마태오 복음 사가는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마태 20, 1)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늘나라는 바로 ‘밭 임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밭임자가 어떠한 일을 했는가에 대해서 1절 이하에서 설명을 계속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그 임자는 바로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사람입니다. 아침 일찍와서 일을 한 사람이나 늦게 와서 일한 사람에게 같은 보수를 지급합니다. 주인의 입장에서는 계약한 바대로 지불하는 것이지만 아무리 계약에 근거한 것이라 하더라도 받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불만일 수 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많이 일을 한 사람이 부당함을 토로합니다.

사랑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과 이해의 관점에서 접근 하는 것의 차이입니다. 소유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과 존재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의 차이입니다. 하지만 나의 조그만한 나눔이 바로 이웃을 살리고  도움을 받은 사람이 다시 나눔을 실천하는 이  사랑의 확산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의 정신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곳을 다니시면서 하느님의 나라와 그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와 복음이란 같은 말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하늘나라란 바로 인간의 이해가 지배하는 나라가 아닌 하느님의 사랑이 이 지배하는 나라인 것입니다.

찾아올 수 없는 사람은 찾아가시고 찾아올 수 있는 사람에게는 찾아오게 하시는 예수님의 사목여정의 정신을 보게됩니다. 사랑과 믿음과 순명과 겸손의 정신이 바로 하느님께서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정신이 구현되는 곳이 바로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교회에 편지를 쓸 당시에 코린토 교회에서는 일부 신자들이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전서 15장의 주제를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다루면서 “17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덧없고 여러분 자신은 아직도 여러분이 지은 죄 안에 있을 것입니다. 18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이들도 멸망하였을 것입니다.”(코린 전 15, 17-18)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죽은 사람의 부활에 대해서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가 아테네에서 설교 할 때에 그들은 비웃었다(사도 17, 32)고 합니다. 코린토 교회의 일부 신자들이 이러한 영향을 받아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어도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해서는 믿지 않았기에 이에 대한 응답으로 부활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믿음의 핵심입니다. 영원한 삶에 대한 희망인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의 기쁨은 바로 영원한 삶에 대한 희망 때문입니다. 이러한 희망이 있기 때문에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한 걸은 더 나아가 이 죽음을 하느님의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는 가교로 여기며 오히려 죽음을 기쁘게 맞이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기쁘게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쁨을 갖고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이러한 기쁨의 중심에 바로 하늘나라가 있습니다. 이렇게 부활이 있기에 지금은 죽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러한 복음이 오늘 하루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이웃들에게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시 한번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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